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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코패스, 그의 뇌 공감회로를 보니…
공감부재, 잔혹과 연결돼 있다는 가설속
惡의 실체 과학적으로 밝히는데 도전

나르시시스트·경계선 성격장애
남들보다 편도체·전두관개 활동도 떨어져
잔인성은 우리 안에 잠재돼있음을 보여줘


공감제로
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스물여덟 살의 폴은 바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노려본다는 이유로 맥주병을 깨서 상대의 얼굴 깊숙이 찔렀다. 폴은 재판 내내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걸 그에게 보여줘야만 했다”고 강변하며 상대방의 죽음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는 끔찍한 각종 실험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사람의 피부로 전등갓을 만들고 손을 절단한 뒤 거꾸로 뒤집어 붙이는 일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고통과 감정, 인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잔혹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뇌는 어떻게 다른가, 타고난 것일까.

이런 물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얼버무려졌다.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악’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데 도전했다. 인간을 사물처럼 다루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의 지적 여정은 30여년간 이어졌다. 인간의 감정을 수집해 ‘마인드 리딩(Mind Reading)’이란 DVD에 담았다. 여기엔 무려 412가지의 감정이 소장돼 있다. 그의 가설은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고 사물처럼 다루는 공감 부재가 잔혹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수집한 감정을 바탕으로 배런코언 교수는 공감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에 따르면 공감이란 타인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와 기분에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으로, ‘인식’과 ‘반응’이라는 두 단계로 이뤄진다. 따라서 공감이 제대로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에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배런코언 교수는 지금까지 공감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지들이 이 같은 공감의 주요한 두 구성 요소를 잘 반영하지 못한 탓에 개개인의 공감 능력을 정확히 측정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가 개발한 공감지수는 마음속 공감 능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인 레벨 0, 즉 ‘공감 제로’에서 ‘초공감’을 보이는 레벨 6에 이르는 대략 7단계로 설정된다.

그렇다면 공감 제로인 사람들에게선 어떤 특징이 나타날까. 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경계선 성격 장애’ ‘나르시시스트’ 모두 부정적인 공감 제로 유형이다. 이들 모두가 뇌 속의 동일한 공감 회로에 발생한 문제 때문에 타인과 상호 작용하는 법이나 타인의 기분 혹은 반응을 예상하는 법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돼, 스스로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극단적으로는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공감 제로로 변화해간다.

사이코패스(공감 제로 B 유형)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며, 자신을 좌절시키는 아주 작은 일에도 즉시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계산된 잔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앞선 폴의 예가 여기에 해당된다. 경계선 성격 장애(공감 제로 B 유형)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누구와도 함께 있으려 하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숨 막혀 밀쳐내거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를 번갈아 한다. 할리우드 배우 메릴린 먼로가 이 유형이다.

나르시시스트(공감 제로 N 유형) 역시 양방향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지 않으면 분노한다. 때때로 연쇄살인범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여겨진다.

배런코언은 이들 세 유형은 타인과의 공감이 떨어진다는 심리학적 공통점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내측 전전두피질과 언어 표현에 관여하는 전두관개, 다른 사람의 의도와 믿음을 판단하는 측두두정접합부, 정서의 학습과 조절에 관여하는 편도체 등의 활동이 떨어진다는 점을 밝혀낸다.

그러나 공감 제로에는 두 면이 있다. 타인과 교류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지만 특별한 체계화 능력으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배런코언은 이런 경우 부정적인 공감 제로와 분리해 긍정적인 공감 제로로 정의한다. KBS 2TV 드라마 ‘굿닥터’의 주원이 연기하는 박시온이 여기에 해당된다.

배런코언의 성과는 ‘인간의 잔인성’을 악(惡)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로 규정해온 데에서 ‘공감의 침식’이라는, 어느 정도 손에 잡히는 것으로 보여준 데에 있다. 감성의 적절한 사회적 교류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이다. 잔인성이 단지 몇 가지 드문 질병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돼 있다는 점을 공감 레벨로 보여준 것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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