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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 숲같은 마력과 신비의 영화, 그 속의 꿀같은 인생과 생명의 성찰
터키 영화감독 세미 카플라노글루 감독의 ‘허니’는 작품의 촬영지이자 배경인 터키 고산지대의 숲처럼 마력과 신비, 풍요로운 생명의 힘을 갖고 있으며, 숲속 벌들이 모아놓은 ‘꿀’같은 인생의 빛나는 성찰과 성장을 담고 있다. 그 때의 꿀은 그냥 달콤하기만한 무엇이 아니라 불의의 시련과 고달픈 노동, 인생의 시고 쓰고 매운 진실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 영화의 제목이 ‘허니’, 즉 꿀이다.

영화는 높다랗게 하늘로 뻗은 나무들과, 마치 물결을 일으키듯 잎새를 흔드는 바람소리 가득한 숲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스스로도 커다란 나무 등걸 같이 키가 껑충한 사내가 분주하게 서성이다 마침내 밧줄을 높이 올려 가지에 건다. 당나귀가 옆에서 기다리고, 사내는 나무를 오른다. 그리고 갑자기 벼락처럼 갑작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마치 숲이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내버려두고, 관객이 스크린 안에 일어나고 담기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몇 분 동안의 롱 테이크로 촬영한 첫 장면의 인상과 여운이 길다. 관객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차츰 도입부의 사내가 주인공 소년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시간과 의미를 후반부에서 마주하게 된다. 


사내는 야쿱(에르달 베식시오글루 분)이다. 산에서 벌꿀을 채취해 살아간다. 그에겐 아들이 있다. 여섯살 유수프(보라 알타스 분)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귀여운 소년이지만, 유수프에겐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어 한번도 수업시간에 책읽기 발표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교단 한 옆 유리그릇에 담긴 ‘칭찬 스티커’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느 날은 교과서 한 대목을 열심히 외우다시피해 손을 번쩍 들어 봤지만, 선생님이 시킨 것은 다른 페이지의 이야기. 엄마는 걱정이 크지만, 아빠는 유수프에게 “네가 원하면 아빠 귀에 대고 작게 말해도 된다”고 속삭여 준다. 유수프의 작은 입에 아빠가 귀를 바짝 갖다댈 때면, 신기하게도 유수프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아빠는 때로 유수프가 마시기 싫은 우유도 엄마 눈을 피해 대신 마셔주는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유수프는 꿀을 얻으러 아빠를 따라 울창한 숲에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숲은 유수프의 작은 몸을 품어주는 거대한 아빠의 품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일과 사물, 동물들이 있는 모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꾸 벌이 줄고, 벌통을 달 데가 없다며 더 깊은 숲 속, 더 높은 나무를 찾아 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 유수프는 엄마와 함께 아빠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에서 숲이 상징하는 자연은 마법같은 생명의 힘과, 악몽과 죽음, 미지의 공포가 깃든 곳이다. 바람소리가 끝이지 않고, 안개구름이 늘 피어오르는 유럽 북동부 아나톨리아의 숲을 통해 감독은 빛과 어둠, 따뜻함과 비정함, 포근함과 위압감을 모두 가진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아빠와 아빠의 숲,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헤치고 들어가 마주한 자신만의 숲을 통해 인생이라는 비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소년의 성장담이다. 인위적인 삽입음악이 전혀 없이 작은 새들의 지저귐 소리, 아빠 야쿱이 유수프에게 매달아준 방울 소리,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로 생생하게 귀를 휘감는 소리의 이미지가 놀랍도록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감독은 아빠 야콥과 소년 유수프의 이름을 쿠란으로부터 빌어왔다. 소년의 아주 작은 꿈과 이야기로부터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까지 하나하나를 시각과 청각의 심상에 새겨 넣었다. 유수프의 아빠를 점점 더 깊은 산 속으로 몰고 갈 정도로 파괴돼가는 환경문제까지 담아낼 정도로 영화에 담긴 감독의 사유가 깊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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