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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 클럽 음악이 사라진 빈자리…강바람과 치맥으로 달랜다
30대 가장의 ‘불금’ 엿보기
20분이면 쏜살같이 배달
한여름밤의 영원한 친구 ‘치맥’
한강둔치서 ‘불금’의 본능 제어하며
지친 몸과 마음 가족과 함께 ‘힐링’

쇼핑할 여유 부족한 맞벌이 부부
시원한 대형마트로…홈쇼핑으로…
알뜰한 아내와 즐기는 ‘쇼금’도 별미



여름밤의 도시는 불야성이다. 열대야 탓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밤 문화를 즐기기엔 이때가 제격이다. 많은 이들이 불면을 자청한다.

30대 중반 기혼남 A 씨가 첫손에 꼽은 여름밤을 즐기는 법은 단연 ‘치맥(치킨+맥주)’이다. 밤늦게 배달을 시켜도 단 20분 정도면 눈ㆍ코ㆍ입이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다운로드 받아둔 영화를 보거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방송을 보면서 즐기는 맛이 제법이다. 여기서 분위기를 더 내고자 한다면 한강 둔치를 찾으면 된다. 강 건너 야경이 고급 레스토랑 스카이 뷰 못지않다. 신선한 강바람은 덤이다. 물론 가장 인기 있는 메뉴 1위는 ‘치맥’인 듯 보인다.

외국의 한적한 호텔에서 무슨 뜻인지도 알아듣지 못하는 TV 채널만 열심히 돌려가며 무료한 밤을 보냈던 이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대한민국의 밤을 그리워했노라고.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추억을 갖고 있다면 그리움은 두 배가 된다.

불타는 금요일. 음주가무가 실종됐다. 그 빈자리에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밤늦게 배달시켜도 20분이면 눈과 코, 그리고 입이 호사를 누리는 한여름 밤의 영원한 친구 ‘치맥’.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한강둔치서 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강 건너 야경을 배경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랜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A 씨는 결혼을 한 후에도 종종 불금을 좇는 대열에 뛰어든다. 평일이야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매여, 퇴근하기 무섭게 피곤에 지쳐 잠들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금요일엔 ‘질주본능’ 봉인이 해제된다. 불금을 앞둔 목요일, 몸은 지쳐도 마음은 행복하다.

A 씨도 20대에는 홍대앞이나 신촌, 강남의 클럽에서 금요일 밤을 불태웠다. 하지만 이젠 젊음의 에너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지언정, 그들과 한데 어울릴 나이는 지났다. 그래도 간혹 친구들이 술 약속 자리를 그쪽으로 잡는 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동년배들의 아우성이다. 아드레날린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그런 분위기를 즐긴다.

결혼 후 A 씨에게는 ‘쇼금(쇼핑하는 금요일)’도 새로운 재미다. 알뜰한 아내는 야간쇼핑을 즐긴다. 맞벌이하며 낮시간에 쇼핑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지만, 밤시간 대형마트를 찾으면 할인까지 해주는 상품들이 꽤 많다. 간혹 마트 휴점일을 모르고 일요일 낮에 찾았다가 허탕을 친 이후론 쇼금이 더 잦아졌다. 카트를 끌고 장바구니를 운반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평일에는 늦은 밤까지 잠을 참지 못하는 아내지만 금요일 밤이면 종종 심야 홈쇼핑 채널에 몰입한다. 요즘엔 그래서 그 시간대에 여성들이 선호하는 상품들이 대거 방송된다.

심야영화는 가장 오래된 밤놀이다. 심지어 일반 관람료보다 3000원 정도 저렴해,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날엔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자정 가까운 시간 영화관이 한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름밤엔 유난히 심야영화를 찾는 이들이 많다. A 씨도 영화광은 아니지만, 여름에 대거 개봉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은 큰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이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여름이 길어지면서 밤을 즐기는 레퍼토리도 다양해졌다. 요즘엔 집 근처 카페에서 아내와 담소를 나누는 것도 A 씨의 행복이다. 한때는 편의점이 24시간 영업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이젠 야식이나 커피를 24시간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 카페도 수두룩하다. 카페에도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발레파킹하는 직원도 심야까지 일을 한다.

‘달밤의 체조’란 비아냥도 이젠 옛말이다. 한적하게 운동을 하러 찾은 심야의 피트니스센터도 심야족들 차지다. 평일에도 자정까지 운영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직원들 말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 9시 이후에 회원들이 집중적으로 몰린다고 한다. 대개 아침ㆍ낮 시간에 운동할 여가가 없는 직장인들인데, 방학을 맞아 대학생ㆍ청소년들도 몰리다 보니 러닝머신을 차지하려면 한참이나 눈치작전을 벌여야 한다.

친구 부부와 더블 데이트를 즐기기도 밤 시간이 제격이다. 간혹 두 부부 모두 짬이 나는 날 집 근처 먹자골목에서 저녁을 해결하곤 하는데, 설거지 당번을 피하려는 A 씨가 특히 그런 자리를 자주 주도한다. 여름밤 먹자골목은 역시 자정을 넘겨서도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다. 맛집을 찾는 발길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낮에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밤에도 똑같이, 아니 오히려 밤에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조상들의 ‘주경야독(晝耕夜讀)’ 유전자가 21세기에는 ‘주근야유(晝勤夜遊)’로 바뀌었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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