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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그들에겐 ‘밤’ 이 없다
범죄로부터 새벽을 지키는 경찰들
쓰레기 치우느라 분주한 편의점 알바
깨끗한 거리를 만드는 백발의 청소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치우질 않으니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네….”

지루한 장마가 잠시 멎은 지난달 30일 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학가. 맥주 캔을 들고 옹기종기 야외로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60대로 보이는 백발의 청소부 아저씨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는 묵묵히 길거리를 오가며 바닥에 나뒹구는 술병을 봉지에 주워 담았다.

“겨울보단 여름에 길에 버려진 쓰레기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아. 겨울에는 추워서 술집으로 들어가는데,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니까….”

콧등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닦기 위해 그는 이따금씩 구부렸던 허리를 뒤로 젖혔다.

푹푹 찌는 무더위를 피해 늦은 밤 야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밤을 잃은’ 사람들도 덩달아 늘었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허준영(21ㆍ학생) 씨는 “밤 10시부터가 피크타임”이라며 야외 간이테이블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분주했다.

“손님들의 90%는 치우지 않고 그냥 가요. 두세 걸음만 걸으면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말이죠. 지나가는 사람들도 쓰레기를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 버리고 가곤 해요.”

서울에서 인천을 오가는 고속버스 운전기사 심재식(49ㆍ인천시 계양구) 씨는 앉을 자리가 없는데도 밤늦게 귀가하는 손님들이 막차 시간에 몰려 무리하게 버스를 타서 곤혹스럽다.

“여름이 되니까 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다 보면 배차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는데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죠. 더 태울 수 있는데 태우지 않는다고 일단 욕부터 하는 손님들도 많고요. 고속버스는 좌석이 없으면 손님을 태우면 안 되거든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웬만하면 다 아는 사연들이다. 요즘엔 ‘밤을 잊은’ 사람만큼 ‘밤을 잃은’ 사람도 빠르게 늘고 있다.

‘24시간 찜질방’ ‘24시간 카페’에 이어 ‘24시간 헬스장’까지 등장했다. 그 덕분(?)에 헬스트레이너 추수빈(29ㆍ서울시 광진구) 씨는 밤 11시에 출근해 아침 8시에 퇴근하게 됐다. 밤낮이 바뀌다 보니 힘들지만 ‘밤을 잊는’ 손님들이 원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최근 들어 야간에 운동하는 젊은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하루에 신규 회원을 위한 오리엔테이션(OT)이 2시간 정도, 개인 회원들을 위한 개인지도(PT)는 1시간씩 3회 정도 늘 잡혀 있죠. 새벽시간에 헬스장을 찾는 사람도 열댓명이 넘죠. 때론 회원들 중에 떡볶이나 토스트 등을 가져오시는데, 그 시간대에 회원들과 같이 먹으면서 일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지구대 소속 박 팀장은 정신 없이 출동을 나가다 보면 어느새 새벽해가 떠 있다. 여름에는 사람들의 활동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주취폭력이나 성범죄가 증가해 평소보다 2~3배는 더 자주 출동을 나간다.

“여름에는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부축하는 척하면서 지갑을 훔치는 ‘부축빼기’ ‘아리랑치기’가 성행합니다. 현재 지구대 인원이 7명인데, 이 인원으로 밤사이 일을 모두 도맡아야 하죠. 지구대가 역 부근에 있다 보니 유동인구가 하루에만 10만~35만명인데 말이에요.”

오늘도 밤을 잊은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는 밤을 잃는, 그런 여름밤이다.

이정아 기자ㆍ김하은ㆍ박사라 인턴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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