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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공직자 靑 눈치보기…코스 읽기보다 어렵다
골프, 치라는 소리인지 말라는 소리인지…
역대 정부의 공직기강 우회 압박카드 ‘골프금지령’
지지율·여론따라 죄었다 풀었다 오락가락…공무원도 헷갈려
골프는 죄 아닌데…가이드라인 정해놓고 개인 판단 맡겨야


“지난 국무회의 때 캐디들 수입도 그렇고 자꾸만 외국 나가서 (골프를 치니)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언론사 논설실장과의 오찬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 사회를 들었다 놨다한 적이 있다. 당시 부처 공무원들과 심지어 청와대 내에서도 골프 ‘해금이다’ ‘아니다’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한 부처 공무원은 “대통령이 직접 (골프를) 쳐도 좋다고 할 수 있겠냐. 암묵적으로 쳐도 좋다는 사인으로 생각한다. 달력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며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골프 해금’으로 해석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청와대 한 참모는 “내가 보기엔 골프를 쳐도 좋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직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별 생각 없으면 칠 수야 있겠지만…”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적이 있다.

급기야 최근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선 “웬만하면 필드 대신 스크린 골프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라운딩할 사람이 문제가 될 만한 상대가 아니고 자비로 하는’ 선에서 골프를 허용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이나 각 부처 공무원들이나 한결같이 골프를 쳐도 되냐 안되냐가 초미의 관심사인 셈이다.

한국 공무원 사회에서 ‘골프 금지→해금’이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길게는 5년마다, 짧게는 매년 공무원들의 골프는 금지와 해금을 반복했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치 9단으로 통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골프를 정치적인 함수로 이용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골프를 공직기강과 국정기조 확립의 칼날로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바로 잡고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따라줄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상징적인 카드가 공무원들의 골프 금지라는 것이다.

공직사회에 전면적인 골프 금지령이 처음 내려진 것도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다. 아이러니하게 인류 역사에 ‘골프’라는 단어가 나오는 최초의 기록물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가 1457년 사람들이 골프에 빠져 영국과 전쟁에 대비한 궁술 연마를 등한시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반포한 골프 금지령이다.

우리나라에선 1971년 당시 백두진 국무총리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고위 공무원의 골프를 금지시킨 게 시초다. 이후 공무원 골프 금지는 선거가 있거나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선거를 앞두고 고위 공무원들이 골프장을 출입하는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별로 달갑지 않게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YS는 1993년 대통령이 되자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 사실상 공무원들의 골프를 금지시켰다. 이는 골프를 좋아하던 군 출신 중심의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 목적에서였다고 한다. YS는 재임 기간 내내 공무원들의 골프 금지령을 풀지 않아 일부 고위 공무원들은 “98년 3월 1일 필드에서 만납시다”는 자조섞인 말을 내뱉기도 했다고 한다.

야당 총재 시절 “골프장을 갈아엎어 논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골프에 부정적이었던 DJ는 되레 공무원들이 골프 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도 정치적인 함수가 있었다. YS가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골프를 금지시켰다면, DJ는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카드로 골프 대중화를 꺼냈다.

MB정부에서도 공무원들의 골프는 술래잡기를 계속했다. MB정부가 출범했던 2008년 3월 초 당시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시점에서 골프를 하는 수석이나 비서관은 없겠지만…”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든 공직자들이 골프채를 놓았다.

청와대 안팎에선 해금 건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2009년 5월 출입기자들과의 삼계탕 오찬 자리에서 공직자 골프 허용 문제가 거론되자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대통령에게 신고하면서 할 필요까지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골프 비용 약 20만원은 너무 비싸다. 골프는 시간이 많이 걸려 운동이 제대로 안 된다”는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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