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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임 1세대 김성구, “배우는 머리 아닌 몸뚱아리로 연기해야”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붉은 입은 웃되, 눈에선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는 삐에로의 얼굴은 광대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떠돌이 유랑극단의 삶을 다룬 연극 ‘아리랑 랩소디’(~8월11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마임이스트 김성구(62)의 마임은 궁극적 순수예술의 표징이다.

“나무칼로 용의 배를 가를 수 없고, 독재자의 목을 벨 수 없단 말인가? 나무칼로는 정녕 쇠칼을 이길 수 없단 말인가?”라는 대사를 반복하며, 현실참여와 순수예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유랑극단 단원 오희준이 지향하는 삶이 바로 광대다.

데뷔 40년을 맞은 한국 마임 1세대 김성구가 이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오희준 역할의 배우 김진근이 추천해서다. 지난 26일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분장실에서 김성구가 사진 촬영을 위해 삐에로 분장을 하는 사이 옆에 있던 김진근은 “저의 롤모델이시죠. 너무 대단하세요”라며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때론 몸짓과 표정이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준다. 데뷔 40년 동안 무대에서 단 한마디도 해 본 적 없는 마임이시트 김성구의 연기가 그렇다.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김성구는 춘천마임축제를 25년간 이끌다 올해 사퇴한 유진규 예술감독과 함께 한국 마임 1세대 대표주자로 꼽힌다. 동성중학교 동기 동창인 둘은 한국 마임을 개척하다시피 하며 함께 길을 걸어 온 애틋한 사이다. 유진규가 ‘팬터마임’이란 말을 처음 썼고, 김성구는 ‘침묵극’ ‘묵극’이란 말을 만들어 썼다. 유진규는 프랑스 식의 정교한 팬터마임에 능하다면, 김성구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슬픔을 표출하는 마임에 강하다.

김성구의 깡마른 체형과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은 그냥 서있기만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난 팔자가 센가봐. 진규는 문법으로 가는데, 나는 몸의 채취로 가고….” 그는 스태튜(동상처럼 보이게 하는) 마임 등 실내가 아닌 주로 길거리에서 공연을 펼쳤다.

지금이야 대학 연극과나 연기과에 마임 과목이 개설해 있지만 당시로선 단어도 생소한 마임을 그는 스스로 배웠다. 1985년 프랑스 아비뇽에 초청 연수를 가, 흠모해 오던 세계적인 마임이시트 막셀마르소를 만난 뒤에야 자신의 마임에 대한 확신이 섰다. 계원예고, 세종대에서 마임 교수로 재직할 때는 그럭 저럭 생활이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굶는 게 미덕”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외롭고 힘겨운 길을 가고 있다.

김성구 마임이스트.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극 중 극’ 형식인 ‘아리랑 랩소디’에서 그는 공연의 커튼을 열고 닫는 역할, 오희준을 영원불멸한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로등장한다. 김성구에겐 대사는 물론 대본 상 지문도 없다.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지만 슬픈 결말의 신파적인 극에 대해 김성구는 “나도 비애감을 좋아하지만, 배우는 슬픈 얼굴까지 해도, 절대 울면 안되요. 왜냐면 관객이 울도록 해야하니까”라고 말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김경익 연출은 “배우가 울면 그것은 관객의 눈물을 구걸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김성구는 또 유학파를 비롯해 마임 2, 3세대에 대해 “죄다 몸이 아닌 머리로만 하려들어. 그게 가장 불만스러워요. 우리는 예술이란 검증을 못받아도, 창의력은 있었거든. 마임은 머리가 아닌 몸뚱아리로 해야해요”라고 조언했다.

40년 동안 무대에서 단 한번도 대사를 하지 않은 그는 내년 초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길거리가 아닌 실내 공연장에서 올린다. 1, 2부로 나눠 1부는 황홀경과 매화, 사화꽃 등 세가지 꽃을 주제로, 2부는 세익스피어 희곡의 대목을 마임으로 표현하는 ‘마임 인 세익스피어’로 구상 중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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