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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꿈틀대는 동시대 한국미술…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그야말로 4인4색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 과천관에서 지난 19일 개막한 ‘올해의 작가상 2013’전은 살아꿈틀대는 우리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Korea Artist Prize)’은 한국현대미술의 잠재력과 다양성을 진작시키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SBS문화재단과 손잡고 지난해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이는 대형 프로젝트. 올해는 공성훈, 신미경, 조해준, 함양아 등 4명이 독립된 공간에서 4건의 개인전을 꾸몄다.

SBS문화재단측으로부터 각기 4000만원을 지원받은 작가들은 평소 구상은 해왔지만 제작비 부담 때문에 미뤘던 아이디어를 실현하며 회화, 조각, 설치, 영상작업을 일제히 쏟아냈다. 총출품작은 110점.

네 작가 작업의 공통점은 명쾌한 논리를 바탕으로 탄탄하면서도 예리한 작품세계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의 주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낸 작품들은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공성훈, 절벽(담배피우는 남자), 181.8x227.3cm, Oil on Canvas 2013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불안감과 갈등을 치밀하게 묘사하거나, 서로 다른 문화간 간극과 그 접촉의 결과를 변주하고 있다. 또 세대간 경험의 극명한 괴리에 주목하며 소통을 모색하기도 하고, 오늘 우리사회 속 생생한 삶의 현장을 낯설게 뒤틀어 풍자하기도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나 서울산업대에서 전자공학과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 공성훈(48)은 ‘겨울 여행(Winter Journey)’을 주제로 대형 회화를 출품했다. 을씨년스런 겨울의 대자연을 그린 공성훈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외경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착취될대로 착취돼 마치 연극무대의 셋트처럼 변한 자연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스산한 풍경은 검은 폭풍과 구름이 여전히 그 위용을 과시한다. 그것은 자연인 동시에, 그를 뛰어넘는 인간이 만든 재앙(이를테면 금융위기)이라든가 위기, 일촉즉발의 전쟁위협을 시사하기도 한다. 공성훈은 장엄한 대자연 풍경 한구석에, 담배를 피우는 남자 등 뚱딴지같은 요소를 슬쩍 집어넣는 파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2006-2013, 비누, 가변크기.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20년 가까이 비누를 소재로 입체작업을 해온 신미경(46)은 ‘트랜스레이션-서사적 기록’이란 타이틀 아래 전시를 꾸몄다. 평소 ‘번역’을 테마로 삼고 있는 그는 대리석(또는 화강석) 같은 단단한 재료로 만든 세계 각국 박물관의 고전적 유물을 부드럽고 무른 일상적 재료인 비누로 옮겨낸 작업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저 유명한 ’비너스‘라든가 중국의 화려무쌍한 도자기 등을 비누로 재현한 작업이 그 예다.

이같은 작업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자리한 고전적 전범을 무르게 만듦으로써, 그 전범들이 지닌 견고한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때때로 작가는 번역을 시도하며 의역에 가까운 번역도 감행한다. 결국 신미경이 시도한 ’창조적인 번역‘은 원본과 번역된 사물 사이의 차이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를테면 서양 조각의 얼굴을 작가 자신의 얼굴로 바꾼다거나, 유럽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중국서 제작한 화려무쌍한 도자기를 투명한 유령처럼 바꿔놓는 식이다. 

조해준, 기념수, 2003-2013, 100여개의 조각, 혼합재료, 드로잉 등. 300x400x400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신미경의 비누작업은 향기를 통한 후각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있어 시각만이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일깨우며,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미술교사였던 부친(조동환 씨)과의 독특한 공동작업 방식을 통해 드로잉 연작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조해준(41)은 이번에도 아버지와의 협업을 시도했다. ‘사이의 풍경’이란 타이틀 아래 젊은 시절 국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했던 아버지의 쓰라린 기억을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든가, 아버지가 제작한 옛 조각을 자신의 작업과 묶어 ‘기념수’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설치미술을 펼친 것.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의 삶이 공존하는 이번 작업은 어느 평범한 생활인의 소박한 창조물이 동시대 미술작품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또 현실과 환상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삶의 편린도 낮은 목소리로 드러내고 있다.

 
함양아, 팩토리 지하, 2013, 비디오 설치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영상을 중심으로 오브제,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구사해온 함양아(45)는 ‘넌센스 팩토리’라는 타이틀 아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축소판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명적 삶에 푹 빠져사는 나머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는(그리고 별반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도시인들에게 그의 비디오 설치작업은 커다란 거울처럼 우리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는 현대 사회를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풍자했다. ‘복지정책을 만드는 방’, ‘쿠폰을 만드는 방’ ’예술가들의 방‘등 6개의 방으로 구성된 함양의 전시장은 현대사회에서 이데올로기화된 행복, 성장제일주의 속 짓밟히는 인간의 존엄, 예술계의 문화적 속물주의 등 우리사회의 각종 이슈들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4명의 작가 중 최종 선정되는 ‘올해의 작가’는 오는 9월 중 발표된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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