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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킴 김창일 “꿈을 향해 돌진하는 내겐 ‘드림바이러스’가 숨어있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그는 3개의 얼굴을 가졌다. 비즈니스맨이자 세계적인 아트 컬렉터, 그리고 아티스트. 바로 아라리오 그룹의 김창일 회장(61)이다.

세계에서 백 손가락 안에 드는 아트컬렉터이자, 거의 맨주먹으로 충청권을 대표하는 기업을 일군 사업가이며, 10년 전부턴 미술가로 활동 중인 김 회장은 에너지와 끼가 펄펄 넘치는 사람이다. 입만 열면 ‘instinct(본능)’를 외치며 1인3역을 치열하게 해내는 그는 그 어떤 대상 보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사람이다. 무슨 재주로 떵떵거리는 부자가 됐을까, 안목이 얼마나 좋길래 수집하는 작품마다 가격이 뛰는 걸까. 게다가 미술작업은 왜 하는 걸까? 답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비즈니스맨 김창일 “실패도 잘 해야 한다”= 김창일 씨의 공식직함은 아라리오그룹 회장이다. 천안 도심의 신부동 2만평 대지에 ‘아라리오 스몰시티’라는 멋지고 독특한 예술왕국을 건설했다. 천안을 찾는 사람들은 세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 서울에서 너무 가까와 놀라고, 둘째 천안 아라리오 스몰시티에 당도하면 “이렇게 멋진 조각광장이 있는 걸 보면 아직 서울인가 보다”했다가 천안이라는 점에 놀라며, 셋째 조각광장과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들의 수준과 그 ‘놀라운 작가 브랜드’에 놀란다는 것이다.

아라리오 스몰시티에는 백화점(신세계 충청점)과 멀티플렉스(야우리시네마), 고속버스터미널, 식당가, 아라리오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모두 김창일 회장이 땀흘려 일군 것이다. 거대 기업의 오너이니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금숟가락을 물고 나왔겠지’ 넘겨짚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자 투성이의 손바닥만한 시외버스터미널을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은 게 전부다. 

김창일(기업인/미술가/아라리오회장)

대학시절과 군대시절은 더욱 참담했다. 휘문고를 나와 목표로 했던 대학을 두차례나 떨어지고, 삼수 끝에 경희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재수시절과 대학시절에는 늘 불평만 달고 살았다. 군대(의장대)에서는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런데 참 묘한 게 극한에 도달한 순간 그는 명상에 빠져들게 됐다. 괴로움의 꼭지점에 닿자 자신이란 존재를, 그리고 불평과 불안으로 가득찼던 지난 삶을 너무나 통렬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 고단함과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 거의 막바지 탈출구로 여기며 시작한 명상과 참선이 그의 의식과 행동을 180도 바꿔놓은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는 암시도 이 때부터 하게 됐다. 그리곤 1978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천안에 내려갔다. 천안의 버스터미널을 인수한 어머니는 적자가 심해지자 세째 아들에게 월 임대료 3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터미널 운영을 맡겼다. 이에 그는 전국의 터미널을 모두 찾아다니며 그 현황을 샅샅이 분석했고, 마침내 매점에 눈을 돌렸다.

“터미널 사업에선 매점이 꽃이었다. 매점에 수익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점을 직영으로 돌리려하자 몇몇 임대업자가 내게 회칼을 들이댔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매점을 인수하고선 고객이 뒤로 자빠질정도로 세련되고 깔끔하게 꾸몄다. 그러니 곧 흑자로 돌아섰다.”

냄새 퀴퀴하게 나던 시골 매점을 더없이 미니멀하고, 멋지게 꾸민 게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놓은 동인이었다. 그리곤 터미널을 신부동으로 옮기고, 어머어마한 금액을 투자해 오늘의 복합공간으로 키웠다. 


김창일(기업인/미술가/아라리오회장)
“인구 18만명인 천안에 수백억원을 써가며 멀티플렉스, 백화점, 갤러리를 들이자 모두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천안만 보지 않았다. 예산 홍성 평택 조치원까지 함께 봤다. 물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다. 피를 말린 순간, 수백번도 넘는다. 높은 파도에 몸을 던지려한 적도 여러번이다. 그러나 실패도 해봐야 성공한다. 단, 시시한 실패는 소용없다. 치열한 실패, 진정성이 담긴 실패가 필요하다”

▶컬렉터 김창일 “직관이 생명이다. 5초 안에 결정하라”= 김 회장은 영국의 미술잡지 ’아트리뷰‘, 독일의 라이프스타일잡지 ‘모노폴’이 선정한 ‘세계의 파워컬렉터’에 자주 오르는 인물이다. 미국의 유서깊은 잡지 ‘아트뉴스'도 최근호에서 김창일을 세계의 200대 컬렉터 중 한명으로 꼽았다.

이들 잡지의 파워컬렉터에 오르려면 투자금액도 커야 하지만, 무엇보다 컬렉션 내용이 짱짱해야 한다. 그는 지그마 폴케, 키스 해링, A.R 펭크, 앤디 워홀, 신디 셔먼, 뤼퍼츠, 네오 라흐, 왕광이 등 기라성같은 작가의 작품을 모았다. 한국작가 작품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총 수집점수는 3700점.

“1979년 천안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수익을 냈을 때 가장 먼저 인사동으로 달려갔을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다. 미술만큼 나를 전율케 하는 건 없다. 가히 무한대의 펀치, 무한대의 상상력을 선사하니까. 매달 자기 몸의 피를 뽑아 그 피로 두상조각을 만드는 작가(마크 퀸)가 있질않나, 상어를 방부(포름알데히드)용액에 통째로 집어넣는 작가(데미안 허스트)가 있질 않나, 매일 숫자만 하염없이 써나가는 작가(오팔카)가 있질 않나, 그 커다란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을 광목으로 칭칭 싸매는 작가(크리스토)가 있질 않나, 자신과 함께 잠을 잔 사람들의 명단을 자수로 수놓아 텐트 안팎을 뒤덮은 작가(트레시 에민)가 있질 않나...이런 엄청나고, 일반의 예상을 뒤덮는 획기적인 실험을 하는 예술장르가 미술말고 또 있단 말인가. 정말 미술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예술이다"

그는 자신을 매료시킨 작가의 작업은 아무리 고가라도, 또 설령 제작이 덜 끝났더라도 대금을 지불한다. 그렇게 산 것이 바로 데미안 허스트, 지그마 폴케, 마크 퀸, 네오 라흐의 작업이다. 독일 ’라히프찌히 화파‘의 대표주자인 네오 라흐의 회화는 자그만치 열번을 찾아간 끝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가 수집한 네오 라흐의 그림들은 네오 라흐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수작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이렇듯 김창일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지구 끝까지, 아니 우주 끝까지도 찾아갈 사람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0~20대 청소년들이 즐겨 입는 중저가 브랜드의 1만5000원짜리 티셔츠와 데님을 무시로 입고 다닌다. 밥도 비싼 건 사양한다. 술도 소주만 마신다. 지독한 구두쇠다. 그런데 미술에 있어선 앞뒤 안가리고 돈을 지른다. 마음에 드는 마스터피스를 만난 순간에는 5000원짜리 된장찌개만 고집하던 ’왕소금‘ 김창일은 간데 없다. 자동으로 종적을 감추고, 다른 김창일이 등장하는 것이다. 작품활동을 위해 그는 니콘 카메라를 100대 가까이 샀으며(그의 작업실은 제주, 천안 등 여러 곳으로, 가는 곳마다 지체없이 셔터를 눌러대기 위해 카메라를 폭풍(?)구입했다), 토마토 회화 작업을 위해 그 비싼 토마토를 박스째 사다가 화폭에 아낌없이 투척(?)하곤 한다.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아트바젤 홍콩‘을 찾았을 때도 영국의 채프만 형제 작품을 질렀다. 100만달러로 제시된 금액은 밀당(밀고 당기기)을 한다면 조금 깎을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0.3초만에 ‘오케이’를 외치고 말았다. 그 쇼킹한 작품세계가 가슴이 벅차도록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채프만 형제의 좋은 작품은 전세계 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린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경쟁인 것이다. 그러니 좋은 작품을 맞닥뜨렸을 때 망설여선 안된다. 미국이며 유럽의 훨훨 나는 컬렉터들을 제치고, 작품을 손에 넣으려면 죽어라 공부하고, 뛰어다니는 것과 함께, 때때론 빠르고 획기적인 판단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아라리오의 큐레이터들은 이런 회장님을 진정시키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본능(instinct)을 믿으며, 모든 사안을 5초 내에 결정한다. 물론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평소 엄청나게 스타디하고, 각종 정보를 분석하곤 한다. 그는 “나 역시 초창기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사업가로서도 그렇고, 컬렉터로서도 그랬다. 수집한 작품의 절반 가까이는 실패한 컬렉션이었다. 오늘날 겉으로 드러난 아라리오의 컬렉션을 보고 ‘적중율이 높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수업료 무진장 많이 냈다. 그런 뼈아픈 실패를 겪었기에 요즘은 ‘정답'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다. 요즘은 인도와 필리핀 등 아시아의 현대미술가들에 주목하는데 또다른 신천지"라고 했다. 이어 “한국의 컬렉터들은 너무 예쁜 작품만 좋아한다. 장식하기 좋은 예쁜 그림만 쫓아선 발전이 없다. 좀더 도전적, 독창적이며 파괴력있는 작품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컬렉터로서 그의 최종목표는 수집품으로 지금까지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그날을 향해 그는 가열차게 달리고 있다.

▶아티스트 씨킴 “꿈 없인 행복할 수 없다“= 김창일이 최근 10여년간 가장 혼신을 바친 부분은 미술작업이다. 남들은 “사업가에, 컬렉터로 성공했으면 됐지 아티스트는 왜 하느냐”고 힐난한다. 아내(김갑희 씨) 역시 처음엔 ‘취미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귀를 틀어막았는지 꿈쩍도 않는다. 갈수록 치열함이 더해진다. 그의 최종 꿈이 세계적인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김창일은 자신의 이름 영문이니셜을 따 ‘씨킴(CI KIM)’이란 이름으로 10년째 활동 중이다. 어느새 일곱번째인 개인전도 개막했다. ‘SAILING’이란 타이틀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개막(~9월 22일까지)한 전시회에는 회화와 조각, 설치, 사진 등 30여점의 작품이 나왔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태도와 작업을 ’항해‘에 견준 이번 전시에서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 자연과 인공의 상관관계, 우주의 순환 등을 다룬 작업을 쏟아냈다.

제주도 동남쪽 끝자락 하도리에서 일년이면 약 150일 가량을 홀로 생활하는 김 회장은 그곳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제주도 발견’을 새로 선보였다. 또 ‘죽음과 재난’ ‘역동적인 항해’라는 주제의 작업도 곁들였다. 


몇년 전 제주 하도리에 작업실을 마련한 씨킴은 새벽 4,5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뒤 홀로 해안가를 거닌다. 점심 식사 후에도 하도리 작업실에서 성산 일출봉까지 두시간 거리를 배낭을 짊어지고 산책한다. 개 두마리와 함께 해변을 거닐며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온 그물과 부표, 바람과 물에 쓸리고 햇빛을 받아 말라비틀어진 나무둥치 따위를 수거해온다. 동네 어귀에 나뒹구는 플라스틱이며 고철, 버려진 신발, 카시트 따위도 옮겨온다.

그렇게 수거해온 것들을 관찰하고 매만지며 ‘Sailing’에 부합되는 작업을 시도한다. 쓸모를 다해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녹슨 냉장고와 쌀통, 짠 냄새 배인 낡은 스티로폼은 김창일에 의해 장화를 신거나 안경과 모자를 쓴다. 그리곤 엉뚱하고 당돌한 작가의 모습을 꼭 닮은 자화상이 된다.

다양한 폐품과 오브제를 활용해 허허실실 전법 구사하듯 어깨 힘 빼고 즐겁게 만든 자화상 연작을 보여주는 섹션은 이번 전시 중 가장 흥미로운 섹션이다. 또 어울리지 않을법한 조합을 독특한 설치작품으로 탈바꿈시킨 시도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든다. 각종 사물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투영시킨 김창일의 실험을 만날 수 있는 코너다.

그는 또 토마토그림, 사진작업, 철판작업, 네온작업을 넘나들며 자신의 예술적 직관(intuition)을 펼치고 있다. 스스로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초상화에선 눈은 3개, 입은 3개, 코는 2개지만 귀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쩌지 못해 끝없은 말들을 쏟아내고, 현대의 비주얼아트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눈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자신의 초상을, 재기발랄하게 표현한 인물화인 것이다. 


김창일 말한다. “꿈 없인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내게 꿈이란 작가로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다. 남들은 웃지만 나는 믿고 달린다. 내 몸안엔 드림 바이러스가 가득하니까. 게다가 우주도 내 편이니까”.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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