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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즈니스맨, 세계적 컬렉터 그리고 아티스트
‘드림바이러스’ 에 감염된 세얼굴의 사나이…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의 펄펄 끓는 인생
그는 3개의 얼굴을 가졌다. 비즈니스맨이자 세계적인 컬렉터, 그리고 아티스트. 바로 아라리오 그룹의 김창일 회장(61)이다. 세계에서 백 손가락 안에 드는 아트컬렉터이자, 거의 맨주먹으로 충청권을 대표하는 기업을 일군 사업가이며, 10년 전부턴 미술가로 활동 중인 김 회장은 에너지와 끼가 펄펄 넘치는 사람이다. 입만 열면 ‘instinct(본능)’를 외치며 1인3역을 가열차게 해내는 그는 그 어떤 대상보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사람이다. 무슨 재주로 떵떵거리는 부자가 됐을까, 안목이 얼마나 좋길래 수집하는 작품마다 가격이 뛰는 걸까. 게다가 미술작업은 왜 하는 걸까? 답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비즈니스맨 김창일 “실패도 매우 필요하다”=그의 공식 직함은 아라리오그룹 회장이다. 천안 도심 신부동 2만평에 ‘아라리오 스몰시티’라는 왕국을 건설했다. 스몰시티에는 백화점(신세계 충청점)과 멀티플렉스(야우리시네마), 고속버스터미널, 식당가, 아라리오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거대 기업을 일궜으니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금숟가락을 물었겠지’ 넘겨짚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자투성이의 손바닥만한 시외버스터미널을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은 게 전부다.

대학과 군대 시절은 더 참담했다. 휘문고를 나와 목표로 했던 대학을 두 차례나 떨어지고, 삼수 끝에 경희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군대(의장대)에선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런데 참 묘한 게 극한에 도달한 순간 명상에 빠져들게 됐다. 괴로움의 꼭지점에 닿자 자신이란 존재를, 그리고 불평과 불안으로 가득찼던 삶을 너무나 통렬하게 보게 된 것.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는 암시도 이때부터 하게 됐다. 그리곤 1978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천안에 내려갔다. 천안의 버스터미널을 인수한 어머니는 적자가 심해지자 셋째 아들에게 월 임대료 3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터미널 운영을 맡겼다. 이에 그는 전국의 터미널을 모두 찾아다녔고, 매점에 눈을 돌렸다.

 
자신을 키운 건‘ 99%의 꿈과 1%의 돈’이라는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회장. 성공한 사업가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파워컬렉터인 그는‘ 씨킴’이란 이름으로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자신의 개인전 출품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서진수]

“매점을 직영으로 돌리려 하자 몇몇 임대업자가 회칼을 내게 들이댔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매점을 인수하고선 고객이 뒤로 자빠질 정도로 세련되게 꾸몄다. 그러니 곧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곤 터미널을 신부동으로 옮기고, 어머어마한 금액을 투자해 오늘의 복합공간으로 키웠다.

“인구 18만명인 천안에 수백억원을 써가며 멀티플렉스, 백화점, 갤러리를 들이자 모두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천안만 보지 않았다. 예산, 홍성, 평택, 조치원까지 봤다. 물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실패를 거듭했다. 피를 말린 순간, 수백 번도 넘는다. 그러나 실패도 해 봐야 성공한다. 단, 시시한 실패는 소용없다. 치열한 실패가 필요하다.” 

씨킴의 신작으로, 작은 사다리에 물감통과 종이상자를 얹은 뒤 털모자를 씌웠다. 두툼한 코가 작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컬렉터 김창일 “직관이 생명이다. 5초 안에 결정하라”=김 회장은 영국의 미술잡지 ‘아트리뷰’, 독일의 라이프스타일잡지 ‘모노폴’이 선정한 ‘세계의 파워컬렉터’에 자주 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지그마 폴케, 키스 해링, A.R 펭크, 앤디 워홀, 신디 셔먼, 뤼퍼츠, 네오 라흐, 왕광이 등 기라성 같은 작가의 작품을 모았다. 총 수집 점수는 3700점.

“1979년 처음 수익을 냈을 때 인사동부터 달려갔을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다. 미술만큼 나를 전율케 하는 건 없다. 가히 무한대의 펀치, 무한대의 상상력을 선사하니까. 매월 자기 몸의 피를 뽑아 그 피로 두상조각을 만드는 작가(마크 퀸)가 있지 않나, 독일의 국회의사당을 광목으로 칭칭 싸매는 작가(크리스토), 자기와 함께 잠을 잔 사람의 명단을 텐트에 수놓는 작가(트레시 에민)까지 무궁무진하다.”

그는 자신을 매료시킨 작가의 작업은 아무리 고가라도, 또 설령 제작이 덜 끝났어도 구입한다. 본능(instinct)에 따라, 직관에 따라 5초 내에 단안을 내린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지구 끝까지, 아니 우주 끝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이 컬렉션으로 미술관을 여는 게 최종 목표다.

 
애드거 앨런 포를 형상화한 대작 회화. 특이한 것은 토마토를 캔버스에 부착해, 그 썩어가는 과정을 반영한 점이다.

▶아티스트 씨킴 “꿈 없인 행복할 수 없다”=김 회장이 최근 10여 년간 가장 혼신을 바친 부분은 작업이다. 남들은 “사업가에, 컬렉터로 성공했으면 됐지 아티스트는 왜 하느냐”고 힐난한다. 그러나 그는 귀를 틀어막았는지 꿈쩍도 안한다. 최종 꿈이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김창일의 영문이니셜을 따 ‘씨킴(CI KIM)’으로 10년째 활동 중이다. 최근 일곱 번째 개인전(천안 아라리오갤러리)도 개막했다.

요즘 제주의 동남쪽 끝자락 하도리에서 한 달의 절반 이상을 홀로 생활하는 김 회장은 ‘제주도 발견’을 새로 선보였다. 또 ‘죽음과 재난’‘역동적인 항해’라는 주제의 작업을 ‘SAILING’이란 타이틀로 묶어 9월 22일까지 선보인다.

 
천안 아라리오 스몰시티 중심에 영구설치된 고헤이 나와 작품 ‘매니폴드’. 50억원이 투입된 조각이다.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그는 새벽 4~5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뒤 홀로 제주의 해안가를 거닌다. 성산 일출봉까지 두 시간 거리를 배낭을 짊어지고 산책하며 파도에 휩쓸려온 그물, 부표, 나무둥치를 수거한다. 버려진 신발, 냉장고도 옮겨 온다. 그렇게 수거해 온 사물들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투영시킨다.

또 토마토그림, 사진작업, 철판작업,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자신의 예술적 직관(intuition)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다양한 폐품과 오브제를 활용해 만든 자화상은 특히 흥미롭다. 그는 말한다. “나는 꿈 없인 행복할 수 없다. 내 꿈은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거다. 남들은 웃지만 나는 믿고, 달린다. 내 몸엔 드림 바이러스가 넘쳐나니까. 게다가 우주도 내 편이니까.”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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