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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만 있고 건축은 없는 나라
화려한 건물 속속 들어서지만
뭔가 빠져 공허한 느낌은 왜일까

현실은 건축을 건설기술로 추락
융합학문으로서 교육도 미흡
“건축에 삶의 이야기를 불어넣자”



최근 도시문화로서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우리 현실은 여전히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건설에 머물러 있다. 몇몇 미적 대상이 되고 있는 건축물도 공간 속에서의 어울림 없이 따로 노는 어색함이 느껴진다. 쟁쟁한 이력을 자랑하는 건축가들이 넘쳐나고, 화려한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뭔가 빠져 있는 공허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상헌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마디로 ‘건설 중심’의 건축 개념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그 실현을 책임지는 통합적인 전문 직능으로서의 ‘건축’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시 신청사 건축 과정이다. 최초의 설계 발주가 턴키 방식으로 이뤄져 건설사가 제안한 디자인이 심의 과정에서 계속 떨어지자 서울시가 별도의 현상 공모를 통해 설계안을 뽑으면서 설계자가 결과적으로 둘이 됐기 때문이다. 새롭게 선정된 건축가는 콘셉트 디자인을 제안했지만 실시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배제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이 교수가 쓴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효형출판)는 공중분해 직전의 한국 건축의 현실과 고질적인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쳐 보여준다. 이 교수는 8년간의 미국 유학 후 돌아와 “한국 사회에서 건축사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건축은 설계보다는 비즈니스였고, 건축사는 전문직이라기보다는 소위 ‘업자’였다”고 털어놨다.

이는 건축을 공학으로 가르치고 건설기술로 보는 교육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예술ㆍ과학ㆍ공학ㆍ인문학ㆍ사회과학 등이 접목된 통합 융합적 학문으로서의 제도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파편화되고 늘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란 지적이다. 많은 분야로 쪼개져 있는 건축 관련학회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란 것.

건축의 파편화는 디자인 경향에서도 나타난다. 학문적 토대가 약하다 보니 서양의 최신 디자인 경향을 ‘날것’ 그대로 들여와 난해한 이론과 해설만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인 친환경 건축과 관련, 친환경 건축기술은 있는데 건축으로 통합된 디자인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영국의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시청사, 이탈리아 거장 렌조 피아노의 건축은 ‘건설기술이 곧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문화로서의 건축의 위상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2010년 ‘건축 기본법’이 제정됐지만 건설과 국토 개발의 일부로 다루는 관행은 여전하다.

 
“근대화 과정을 거친 한국은 건축 대신 건설이 문화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공공건축이나 시설물을 지을 때 모든 일정과 계획을 건설이 주도한다. 공공 프로젝트를 할 때 보통 입안부터 설계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설계가 완성된 후 건설계획과 공기가 수립되는 서양과 반대다.”(본문 중)

저자는 국가 수준을 보여주는 건축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건축을 건설로 분류하는 기존의 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을 건설업, 건설기술로 규정한 기존의 ‘건설산업 기본법’ ‘건설기술 관리법’에서 건축 서비스 관련 내용을 제외하고, ‘건축 서비스산업 진흥법’에서 일관성 있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 또 ‘국가계약법’에서 지식 서비스산업으로서 건축 서비스 용역에 대한 자원과 발주 방식을 별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건축이 없다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가 물리적 환경에 부여할 가치나 삶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로서 저자가 뼈저리게 느껴온 건축문화의 허상에 대한 고발이자, 한국적 건축을 향한 제언으로 들을 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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