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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억 이름의 神에게 물었다…우리의 도피처는 어디냐고…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최찬숙 작품전’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개념미술가 최찬숙이 신문로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성곡미술관의 ‘2012 내일의 작가’에 선정된 최찬숙은 ‘90억가지 신의 이름’이란 제목 아래 설치작업, 퍼포먼스 아카이브, 영상을 선보인다.

전시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신의 이름 90억개를 조합하면 세계가 멸망한다’는 아서 클라크의 1950년대 SF소설에서 따왔다. 최찬숙은 인간이 믿고 지배 당했던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온갖 신(神)과, 오늘날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돈ㆍ권력을 성전에 올렸다.

작가는 90억가지 신의 이름은 곧 90억가지 삶의 방식이자, 90억가지 삶의 기록이라고 봤다. 그리곤 인간의 기억에 내재된 에너지에 주목했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컨텍스트 속 인간의 기억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 기억과 교감하려 한 것.

전시는 총 세 파트로 짜여졌다. 1층에는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인터미디어 프로젝트 ‘90억가지 신의 이름’(2013)이 설치됐다. 매일 아침 팟캐스트 라디오에서 20년 전 오늘의 방송을 들으며 일과를 시작하는 글 쓰는 사람, 예루살렘에 최후 심판의 격전지로서 구원이 있다고 믿는 건축가, 기억과 망각의 공간에 숨길 원하는 동대문과 서대문의 두 배우 등 8명의 이야기를 무대에 펼쳐 놓았다. 작가는 이들과의 석 달이 넘는 협업기간에 매주 12가지 질문을 우편으로 보냈다. 협력자들은 “극도의 슬픔과 괴로움의 순간, 당신이 숨는 곳은 어디입니까”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사회 간 접점을 사유하고, 표현했다. 

개념미술가 최찬숙의 영상 설치작업 ‘Forgotten’. 인간의 기억에 주목한 작가는 그 기억으로 장(場)을 만들고, 감상자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 보는 ‘서사학적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제공=성곡미술관]

2층과 3층에는 영상 설치작업 7점과 퍼포먼스 아카이브 4점이 전시됐다.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작가의 천착은 ‘모든 왜곡된 기억의 형태가 곧 현재’라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전시장은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펼쳐주는 장(場)이며, 작가는 그 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들의 기억을 무대에 올리는 디렉터다. 최찬숙은 이를 ‘서사학적 실험’이라 명명했다.

‘Forgotten’(2012)은 동독 정권의 종교탄압 속에서도 끝끝내 믿음을 지켜온 라이프치히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4채널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작가가 미리 제작한 필름을 감상하는 여성들의 얼굴은 말론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로 충만돼 있다. 또 퍼포먼스 작품 ‘Private Collection’(2010)은 서울 문래 지역에서 삶의 흔적을 간직한 노인들을 인터뷰한 영상과 이들의 얼굴이 투영된 종이봉투, 비닐, 무용수의 몸짓으로 이뤄진 다면적 작업으로, 우리 삶을 응시하게 만든다. 7월 28일까지. (02)737-765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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