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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용변 순간까지 감시당했던 아티스트,이를 작품화해 베니스서 선보였더니...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밥 먹고 잠 자고, 심지어 용변 보거나 샤워하는 순간까지 공안당국으로부터 밀착감시를 당했던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중국의 반체제 미술가이자 독립큐레이터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56)입니다.
그는 세계적 권위의 현대미술제인 ‘2013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요즘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중국 당국으로부터 81일간 구금당해 취조받던 자신의 상황을 매우 리얼한 상황극으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전세계 미술계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아이웨이웨이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참여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또 2개의 특별전도 동시에 개막했습니다. 따라서 모두 세군데 전시장에서 석점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거죠.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중국 공안에 구금됐던 2년 전 상황을 디오라마로 재현한 작품입니다.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인근의 산 안토닌 성당에서 ‘아이웨이웨이-디스포지션(Ai Weiwei-Disposition)’이라는 타이틀로 지난달말 개막한 전시는 관람객들 사이에 ‘흥미롭다’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이웨이웨이는 6개의 컨테이너 속에, 81간의 구금기간 중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리얼하게 제작해 넣었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취조를 받는 장면, 공안 두명이 밀착 감시하는 가운데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보고, 샤워하는 장면을 실물 사이즈의 절반 크기로 만들어 철제박스에 설치한 거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철제박스 꼭대기나 위쪽 측면에 작은 창문을 뚫고, 그 작은 창으로 디오라마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점입니다. 중국 당국에 의해 감시를 받았던 순간
을 관람객이 마치 훔쳐보듯, 디딤돌에 올라가 조심스레 살펴보게 한 거죠. 


특히 아이웨이웨이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거나, 샤워하는 순간까지도 공안이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지키고 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람객이며 여행객이 작가의 구금시절을 까치발을 하거나 디딤돌에 올라가거나 하면서 작은 창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고요.

아이웨이웨이는 공안당국의 취조실과 침실, 세면실 내부공간과 각종 집기, 생활도구를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어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라진 벽과 누렇게 찌든 세면대와 변기, 바닥에 놓여진 세제며 수세미까지 실물의 절반 사이즈로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이렇듯 디테일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일부러 디오라마의 마감은 비닐 테잎으로 칭칭 감아 거칠게 표현한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작가 대신 전시장을 찾은 어머니는 아들의 감금장면을 재현한 작업에 말없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하는군요.

아이웨이웨이는 자신의 구금생활 2주년을 기념해 얼마 전 ‘신곡’(神曲·The Divine Comedy)이란 헤비메탈 음반도 내놓았습니다. 자신의 첫 음반인 이 앨범에 구금시절을 풍자한 ‘멍청이’(Dumbass)등 6곡을 수록했습니다. 또 뮤직비디오 ‘멍청이’도 만들었는데, 공안들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던 상황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디오라마 설치작품과 함께, 뮤직비디오, 음반 등으로 자신의 구금시절을 다각도로 작품화한 거죠. 


작가는 또 올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쓰촨성 대지진 당시 붕괴된 학교의 철근으로 설치작업도 시도했습니다. 베니스의 주에카 프로젝트 스페이스(Zuecca Project Space)에서 개막된 전시에는 쓰촨성 참사현장에서 수거해온 철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며 휜 엄청난 양(150톤)의 철근을 지난 2년간 일일이 반듯하게 편 뒤, 이를 차곡차곡 겹쳐 쌓아놓았습니다. 거대국가 중국이 지닌 정치 사회적 문제를 미술을 통해 세계인에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인 셈입니다.

아이웨이웨이는 올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중 독일관 작가로 뽑혀 목제 설치작업 ‘Bang’도 시도했습니다. 다리가 셋 달린 둥근 나무의자를 끝없이 쌓아올려 거대한 비정형의 탑을 만든 거죠. 중국에서 가져온 낡은 ‘삼발이 의자’를 역학계산을 해가며 절묘하게 쌓아올림으로써 위태위태하면서도 거대한 산을 이루는 중국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미술계에서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튀어라. 그러면 월드 스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이웨이웨이는 미술계에선 이미 영향력이 막강한 예술가(그는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매년 선정발표하는 ‘세계미술계의 영향력있는 인물’ 조사에서 늘 1~5위에 오릅니다)이긴 하지만 이번에 베니스에서의 독특한 작품으로 일반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감금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성 안토닌 성당에는 관람객들이 끝없이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는 올해로 55회를 맞았습니다.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비엔날레가 개막되면 세계적으로 소위 행세(?)께나 한다는 미술계 주요인사는 너나없이 베니스로 모여듭니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의 주요미술관 관장은 물론, 유명 전시기획자, 비평가, 컬렉터들이 모두 얼굴을 드러냅니다.
오는 11월24일까지 5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한 올 베니스비엔날레는 ‘튀는 작업’으로 주목받게 된 아티스트들이 여럿 탄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감금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재현한 작업으로 더욱 스타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새둥지 모양의 2008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 설계에도 참여했던 이 재주 많은 예술가는 지난 2011년 4월 3일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다가 공안에 연행됐습니다. 그리곤 81일 만인 6월22일 보석으로 풀려났죠. 당시 탈세혐의 등이 적용됐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아이웨이웨이가 중국의 인권문제및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이웨이웨이는 쓰촨성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5200명의 초등학생 명단을 공개하며 이를 토대로 작업했는가 하면, 부산비엔날레에는 쓰촨성에서 주은 부실한 철근덩어리로 개념미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전시감독으로 위촉됐는가 하면, 작가로도 작품을 선보이는 등 한국 미술계와도 인연이 많은 작가입니다. 이래저래 세계가 주목하는 이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yr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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