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내 연기의 바탕은 이해력”…배역 로모프에 완벽 빙의
연극 ‘14인의 체홉’서 열연 배우 이창훈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에 말도 안 되게 객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 ‘감사합니다’ 하나로 이렇게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5편을 엮은 옴니버스 연극 ‘14인의 체홉’이 공연 중인 서울 동빙고동 소극장 프로젝트박스 시야. ‘백조의 노래’ ‘불행’ ‘곰’ ‘청혼’ ‘담배의 해로움에 대하여’ 등이 하루에 3편씩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극계 대모 박정자를 비롯해 최용민, 박상종 등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하며, 흔치 않은 체호프의 단막극이란 점에서 연일 관객이 밀려들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공연 직후 배우와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의 웃음 유발자는 이창훈(33·사진)이었다. ‘청혼’의 서른다섯 살 노총각 이반 바실리예비치 로모프 역을 맡은 이창훈은 어수룩하면서도 완고한 로모프 역을 완벽히 연기하며 객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중견 배우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났다.


‘청혼’은 혼기를 놓친, 병약한 노총각이 이웃에 사는 스물다섯 살 노처녀(희곡이 쓰인 당시로선)에게 청혼하러 갔다가, 난데없이 토지소유권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극이다. 이 노총각은 청혼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말을 더듬다가 자기 확신에 어긋나는 말을 듣자 흥분해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지기까지 한다. 이창훈의 말투와 몸짓은 관객을 빠르게 몰입시켰다.

공연 뒤 전화로 만난 그는 “연기는 이해력이라고 생각해요. 소리를 잘 질러서도, 눈물을 잘 흘려서도 아니고 그 인물을 이해해야 표현할 수 있거든요. 로모프는 정말 원칙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나중엔 개를 갖고 싸우는데, 개를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연기 경력은 ‘형제의 밤’ ‘유쾌한 하녀 마리사’ ‘갈매기’ 등 몇 편 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연기 전공자가 아니었다. 그는 인하대 정치외교학과를 휴학하고 입대한 뒤 대학로행을 결심했다. “어릴 때 라디오 드라마나 TV 드라마를 녹음해서 대본을 만들고 혼자서 따라해 보는 취미가 있었어요. 군대에서조차 혼잣말로 대사하는 나 자신을 보고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했죠. 주변에 물어볼 데도 없고 무작정 대학로에 가서 아무 곳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그렇게 찾아간 곳이 서울대 연극반 출신이 주축이 된, 전통 있는 연우무대였다. 하지만 퇴짜를 맞았다. 연기 전공도 아닌 데다 이십대의 치기 정도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극장에서도 쫓겨났다.

낭중지추를 알아본 이도 있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특차 실기에서 이창훈은 최형인 교수로부터 “연기를 어디서 배웠느냐? 잘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14인의 체홉’ 기획사 맨시어터 우현주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그를 단원 오디션에서 합격시킨 데 이어 2005년 ‘굿바이 쏭’에 처음 데뷔시켰다. 우 대표는 “당시 오디션에선 프로 배우들도 참가했는데, 이창훈은 연기를 정식으로 해본 적도 없는데 순간 몰입도가 남달랐다”며 “연기는 계단을 밟듯 오르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도약하거나 오래 해도 한 자리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창훈은 성장이 굉장히 빠르다. 연극마다 다른 연기를 보인다”고 극찬했다.(02)766-6007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