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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 · 폭력…비루한 현실을 받아내는 두가지 시선
울음이 목구멍까지 찬 사람들·울 줄 모르는 사람들…그래서 점점 짐승이 되는 사람들

엄마와 그의 정부, 누나와 누나의 아이와 누나의 새 여자애인…욕망을 향한 헛발질의 끝은



분명한 색깔로 소설의 영역을 지켜오고 있는 40대 초반의 두 여성 작가의 소설이 나란히 나왔다. 섬뜩한 후각과 미각으로 육박해오는 소설가 천운영의 네 번째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문학과지성사)와 김이은의 세 번째 소설집 ‘어쩔까나’(자음과모음)는 이왕이면 함께 읽는 게 좋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살점들이 너덜너덜하게 드러난 ‘엄마도~’를 읽으며 메슥거린 속을 ‘어쩔까나’가 좀 달래주기 때문이다.

천운영의 이번 소설집은 울음이 목구멍까지 꽉찬 사람들, 울 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점점 짐승이 돼가는 사람들 얘기로 가득하다. 울음이 생성되는 곳, 눈과 목구멍을 작가는 내내 주시한다.

엄마를 잃은 남자는 담담하게 엄마의 장례식을 치러내고 출근준비를 하며 단정하게 일상을 시작한다. 점심시간, 뼈다구해장국집에서 합석해 허겁지겁 국을 떠먹다가 남자는 우거지 하나를 외투에 떨어뜨린다. 재빨리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수건을 찾지만 손수건이 없다. 늘 따끈따끈하게 다려 엄마가 넣어주던 손수건이 없는 걸 확인한 순간, 그의 울음은 차오르고, 마침내 터져나온다( ‘엄마도 아시다시피’). 꽃무늬 접시 세트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녀( ‘남은 교육’), 칠년을 함께 산 유일한 가족인 개를 박제해달라며 “나 좀, 안아주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청년( ‘유리 입술’), 일곱살, 열네살 자매가 사람을 죽이고 눈알을 뽑은 사건(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의 중심에는 모두 엄마가 있다. 특히 ‘감은 눈 뜬 눈’과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은 잔혹성에 베일 정도로 날카롭고 서늘하다. 모성의 상실과 과잉 사이에서 상처와 폭력이 어떻게 일상으로 공고히 자리잡는지 작가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 그녀는 집요하게 네 눈알을 노렸다. 그녀의 손톱이 네 얼굴을 후벼 파는 동안 너는 최대한 식탁에서 멀리 떨어지려 애를 썼다.”  - 천운영의 ‘감은 눈 뜬 눈’

김이은의 ‘어쩔까나’에는 상처와 폭력의 무게를 받아내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비루한 현실에서 헛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장의사의 행복한 창업 계획서’는 깁스한 엄마와 대머리 까진 엄마의 정부, 누나와 누나의 전남편 소생 아이, 누나의 새 애인인 여자로 구성된 이상한 가족들이 러시아 여자와 사는 아버지가 나눠줄 보상금을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신도로 달려가는 얘기다. 백수인 나는 아버지로부터 보상금을 한몫 챙기면 상조회사를 차릴 꿈을 꾼다.

‘원더풀 라이프’의 박 과장의 믿는 구석은 창고 속에 넣어둔 금개구리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이란 말에 늘 눌리면서도 그는 금개구리와 비밀일기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유부녀 임미경과 하룻밤을 지낸 날, 사업계약은 틀어지고 아내에게서 문자가 온다. 이혼과 금개구리 압수. 금개구리 뒷다리라도 하나 떼어주고 사업을 잘 마무리하려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에도 신나는 현실 도피가 있다. 습관처럼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게 해주세요. 단 하루만이라도”라고 빌던 나는 우연히 미르라는 여배우를 스치면서 ‘양진’이라는 곳까지 가게 된다. 나는 미르를 찾아온 남자와 옆집 노파, 그리고 역장노인과 ‘완전하다’고 할 하룻밤을 지낸다. 보상금을 서로 많이 갖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돌다방 별곡’에서 나는 영화 ‘이티’처럼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김이은 소설은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는 일종의 심리치유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생에 대한 긍정과 유머는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 빼곡하게 들어찬 비밀일기를 넘겨다보면서 박과장은 쓰윽, 웃었다. 금개구리와 함께 창고속에 잠들어있는 다이어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박과장의 자부심과 위로와 은밀한 욕망이 함께 숨어있다.” - 김이은의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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