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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우리 몸은 어떻게 장애를 뛰어넘나…올리버 색스의 ‘마음의 눈'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편두통’ ‘뮤직코필리아’ 등 컬럼비아대 신경정신과 교수인 올리버 색스가 펴내는 책은 늘 놀랍고 감동적이다. 희귀병에 관한 얘기지만 몸의 한 기관의 이탈, 삐걱거림을 통해 인간이라는 전체의 실체와 그 너머를 보여준다.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한 색스의 ‘마음의 눈’(알마 펴냄) 역시 그의 일련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임상기록이자 병례사에 그치지 않고 심상과 뇌, 언어와 이미지,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 뇌과학과 심리학, 경험과 기술 등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영국의 종교교육학 교수 존 헐은 어려서 약시였다가 열세살에 백내장이 생겨 4년 만에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른쪽 눈의 시력 역시 마흔여덟이 되던 해 완전히 잃는다. 시각적 표상과 기억이 사라지다가 결국 본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리는 과정을 헐은 구술로 쓴 책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에서 세세하게 그려놓는다. 시각적 표상을 잃어버린 심맹 상태에서 헐이 발견한 것은 ‘혼신으로 보는’ 상태. 주의를 집중하고 무게 중심을 다른 감각으로 이전하는 것, 그리하여 다른 감각이 새로운 힘과 자양분을 얻는 것이다. 헐은 이제껏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빗소리가 어떻게 새로운 풍경의 윤곽을 보여주는지 보여준다.

“비는 모든 것의 윤곽을 드러내주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에 다채로운 빛깔의 담요를 드리운다. 간헐적인 소리로 가득하며 그래서 파편들로 존재하는 세계와 달리, 꾸준히 떨어지는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청각적 경험에는 연속성이 있어서…하나의 상황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며….”

헐은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시각인지에 관한 다른 사례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심리학자 졸탄 토리는 스물한살에 사고로 실명했다. 일반적인 실명 적응방법은 시각에서 청각으로 전환하는 것이지만 그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즉, 내면의 눈을 키우는 훈련으로 시각적 표상능력을 가능한 한 끌어올렸다. 이 훈련은 성공적이어서 마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조작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이끌어낸다. 그는 본래의 시각 표상만큼이나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가상의 시각세계를 건설한 것이다. 심지어 토리는 자신의 집의 다중 박공지붕 홈통 전체를 혼자 힘으로 교체하기도 한다. 그는 새로 강화된 시각 표상 능력 덕분에 예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관점을 갖게 됐고 기계 같은 장치의 내부, 해법과 모형, 설계를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뇌졸중으로 실독증 환자가 된 하워드는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부끄럽고 놀라다가 점차 허공에 글자를 쓰는 방법으로 ‘읽기’ 능력을 향상시켜 나간다. 읽는 동안 손을 움직여서 눈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낱말과 문장의 윤곽을 따라가는 것이다. 글자의 형태를 치아나 입천장으로 그려보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혀도 움직여 결국 뇌손상이 없는 사람이 읽듯이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일종의 혀로 읽기다. 하워드는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의 연금술이라 할 법한 놀라운 전략으로 읽기를 쓰기로 대체한 것이다. 


뇌의 결함으로 얼굴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뇌는 비상한 창조적 전략을 구사해 상실한 능력을 대체한다. 특이하게 생긴 코나 수염, 안경 혹은 의복 형태, 목소리나 자세, 걸음걸이로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다.

입체시각을 상실해 2차원 평면에 살고 있다면? 두 해 동안 입체시 없이 지내야 했던 저자도 그런 경험의 소유자다. 흑색종이 생기면서 양안시가 아닌 단안시로 생활하면서 색과 깊이를 알아내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좌절하기보다 찬찬히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상황을 극복하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개발해 나간다. 문제를 겪지 않는 이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을 장애를 가진 이들이 의외로 놀랍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지 못한 것, 놓친 또 다른 세계, 몸과 정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해준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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