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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는 왜 늘 배가 고픈가?
문화학자가 차려놓은 양질의 식탁
[북데일리] 식탁에서 밥을 먹은 뒤, 빈 밥그릇을 보면서 허기를 느끼는 ‘빈 밥그릇의 허기’. <허기사회>(글항아리. 2013)는 우리 시대 현대인들의 마음을 설명하는 주요 현상과 의미들을 되짚어주는 책이다.

“생존이 화두가 되는 사냥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는 소진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무기력증은 허기를 촉발시킨다. 우리는 지금 허기사회에서 살고 있다.”(14쪽)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 문화와 맞물려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퇴행, 나르시시즘, 분노’의 색채를 띠고 있고, 이것들은 허기 사회의 징후인 동시에 ‘관계적 결핍의 결과’라는 것.

저자는 1997년 IMF 사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장기침체’ 상태에서, 그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낙관적이었던 세계관이 비관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어 사회적 균열도 급속해져 대중이 느끼는 허기의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1장 ‘퇴행적 위로’에서는 ‘위장된 치유’, ‘자아-퇴행’, ‘스낵 컬처’에 대해 설명한다. 최근 힐링이나 치유 문화가 유행하면서 정서의 마케팅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위로의 형식으로 위장된 치유 문화는 정서적으로 나약한 개인만 만들 뿐이다. 또한 1970년대와 1990년대의 기억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퇴행을 조장하기도 한다. 즉 대중이 현재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시절로 돌아가려는 심리적 퇴행이나 자기위로에 빠진다는 것. 영화 <써니>나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이 그 예다.

아울러 대중은 초콜릿처럼 한입의 달콤함을 주거나 새우깡처럼 바삭거리는 가벼움의 문화를 추구한다. 이것이 스낵 컬처snack culture다.

“140자의 한 줄 블로그인 트위터는 스낵 컬처를 대표하는 미디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영화 <도둑들>, 게임 <애니팡> 등은 우리 사회의 스낵 컬처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강남스타일>이나 <도둑들>은 B급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B급 문화는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메시지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 과거 B급 문화는 말 그대로 B급 감독, B급 배우, 섹스와 폭력적 내용, 소자본 등으로 만든 콘텐츠였다. 그러나 지금의 B급 문화는 과거와 다르게, (중략) B급 감성으로 가벼움과 웃음을 터치한다.“ (p36)

책에 따르면 이 사례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심리적 기제는 퇴행이고, 이것은 ‘나르시시즘의 과잉’으로 연결되며 ‘속물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허기사회를 넘어설 대안은 뭘까?

바로 ‘게릴라 되기’와 ‘눈부처 주체 되기’다. 게릴라는 권력과 제도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저항하고, 제도화된 틀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창의적인 사고력과 실천 의지를 지니고, 세상을 현실의 공간이자 ‘놀이판’으로 이해한다는 것. <나는 꼼수다> 김진숙, 토크콘서트 등이 있다.

“눈부처란 상대방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 비춰진 내 형상을 말한다. 눈부처는 상호존중을 의미하고, 나의 진정한 실체를 상대방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다. 내 모습 속에 숨어 있는 부처, 곧 타자와 공존하려는 마음이 상대방의 눈동자로 비추어진다는 것이다. 눈부처는 내 모습이니 나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눈동자에 맺혀진 상이니 너이기도 하다. 이를 바라보는 순간 상대방과 나의 구분은 사라진다.” (p101~p102)

책은 100페이지로 얇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논문은 전문가들만을 위한 무겁고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깰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현상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화학자가 차려놓은 양질의 식탁에 앉아 정신적 허기의 근원을 살펴보고 일부라도 달래보자.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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