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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랑스런 동자상 보러 제주에 혼저 옵서예…제주 본태박물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탐스러운 머리채를 쌍상투로 틀고, 실눈을 가늘게 뜬 동자상의 어깨 위로 제주의 따스한 봄햇살이 내려앉았다. 가는 눈매와 짧은 인중에 비해 귀는 넉넉하니 크다. 한 녀석은 붉은 연봉우리를, 또 다른 녀석은 연잎줄기를 공손히 받쳐들었다. 살짝 치켜뜬 눈꼬리와 앙증맞은 입술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한라산의 야트막한 끝자락에 새로 둥지를 튼 본태(本態)박물관의 ‘다정불심(多情佛心):조선후기 목동자전’에 나온 17세기 ‘목조동자입상’이다. 연잎과 연봉우리를 든 게 공양 동자상임에 틀림없다.


일본이 낳은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72)의 설계로 지어진 본태박물관(관장 김선희: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의 부인)이 개관 이후 첫 기획전을 27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후기 제작된 목동자상과 사자상, 업경대 등 50여점이 나왔다. 목동자상은 사찰의 명부전이나 나한전에 모셔졌던 높이 70~90㎝ 안팎의 조각으로, 다소곳한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다정불심(多情佛心)’이란 부제를 붙였다.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대기근으로 많은 이가 사망하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지옥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 사찰에 명부(冥府)전이 많이 건립된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지장삼존과 시왕이 자리를 했는데 동자는 시왕 옆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시동(尸童)’ 형태로 등장한다. 



조선후기 동자상은 세조12년(1466) 왕실에 의해 발원된 상원사 문수동자상이 표준이 돼 쌍상투에 넙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기에 민간신앙이 혼재되면서 천진난만한 미소와 귀여운 표정을 띠게 됐다.

동자들은 손에 갖가지 지물을 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붓과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선악동자를 비롯해 연꽃ㆍ복숭아ㆍ석류ㆍ참외ㆍ호랑이ㆍ봉황을 들고 있는 동자를 만날 수 있다. 칠흑처럼 탐스러운 긴 머리카락을 앞으로 살짝 넘긴 뒤태가 아찔할 정도로 관능적인 동자상이 있는가 하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듯한 동자상도 있다.


대부분 순진무구한 미소를 머금은 소년의 형상이지만 깊은 사유의 표현인 가늘고 긴 눈매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또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든 동자상은 우리 옛 인체조각의 미감과 그 안에 깃든 당대 시대상과 민족성을 가늠케 한다. 동자상 외에 고요히 참선에 빠진 나한상, 전생의 업을 비춰주는 당당한 형태의 업경대, 해학적 표현이 돋보이는 사자상도 나왔다. 이 동자상은 대부분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박물관측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특강까지 맡은 유홍준 교수(명지대)는 “조선시대는 초상화가 발달했으나 그에 비해 인체조각은 전해지는 게 거의 없는데 천진한 동자상은 비록 ‘마이너리그적 유물’이지만 조선 인체조각의 멋과 예술성을 가늠케 한다”고 했다. 


한편 세련된 색채와 구도가 ‘서양추상화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아름다운 조선의 보자기와 소반, 도자기, 민예품을 폭넓게 보유하고 있는 본태박물관은 제1 전시실에서 이를 입체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높이 7m에 이르는 높은 전시실 벽을 각양각색의 보자기와 소반을 탑처럼 쌓은 전시공간은 본태박물관의 백미에 해당된다.


제주의 본태박물관은 고(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의 부인인 이행자(68) 고문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현대가 며느리로, 바쁜 일상 틈틈이 옛 선조가 남긴 아름다운 유물을 감상하면서 보자기, 목기, 도자기, 공예품 등을 30여년간 수집해온 이행자 고문은 “나는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유산에 빠져 이를 수집하면서 안복을 톡톡히 누렸다. 마침 둘째 며느리(김선희 관장)가 미술사를 전공해 관장으론 적임자”라고 밝혔다.


이어 “제주도를 찾는 내외국인들이 본태박물관에서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차분히 음미했으면 좋겠다”며 “ ‘본태’라는 박물관의 이름이 매우 특이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많이들 물어오는데 본태는 ‘본래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리킨다”고 했다. “이름만 박물관을 내세운채 어정쩡한 행보를 하는 기존 뮤지엄들에게 확실하게 본때를 보이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본태박물관 운영위원인 나선화 문화재위원(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은 귀뜸했다.


본태박물관은 고미술품 외에 현대미술 컬렉션도 다수 보유 중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박물관 앞에는 너른 연못이 조성돼 미니멀한 건물과 또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낙산사의 아름다운 옛 돌담을 본떠 인간문화재가 켜켜이 쌓아올린 기다란 돌담도 일품이다. 또 야외조각공원도 곁들여졌다.

이 박물관은 향후 다양한 기획전과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를 찾으면 꼭 들려야 할 뮤지엄’으로 자리매김되길 희망하고 있다. 개관 기획전은 오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박물관 입장료(1전시실+2전시실 관람료 포함)1만원.
(064)792-8108   [사진제공=본태박물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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