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우리를 ‘의식 너머의 세계’로 이끄는 임동승의 그림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화가 임동승(38)의 그림에선 시간이 잠시 정지돼 있는 듯하다. 모든 게 초고속으로 무지막지하게 내달리는 이 시대에, 임동승은 시간이 느릿느릿 흐를 것같은 풍경화를 그린다.

그의 신작 ‘겨울 숲1’을 보자.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산비탈 위로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무심하게 뻗어 있다. 또렷한 빛도, 형상도, 선도 없어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차분하니, 고요하다. 분명히 서양물감으로 그린 서양화이지만 동양적 아취가 화폭에 가득하다. 이 땅의 작가만이, 임동승만이 그릴 수 있는 지적이면서도, 차분히 침잠하는 풍경화이다.

인물화 또한 마찬가지다. 머리띠를 두른 단정한 여성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초상연구:구명동의를 착용한 여인’이란 작품은 여성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다. 진홍빛 구명동의를 착용한 여성 뒤로 그저 강(江)인지, 호수인지 알 수 없는 물의 일렁임만이 보일 뿐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서양화과를 다시 다닌 임동승은 흐릿한 형태와 차분한 색조로 시간이 멈춘 듯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은 막연한 한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회상이나 기억을 표현한 그림은 감상자에게 멜랑콜리와 무상함을 전해주며, 우리를 의식 저 너머로 조심스레 이끈다. 


임동승 ‘겨울 숲 1’(160x130cm 면 위에 유화물감). [사진제공=리씨갤러리]


강상중 도쿄대 교수(‘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고민하는 힘’의 저자)는 “임동승의 그림은 보는 이를 위압하는 모든 존재감을 다 지우고 남은 자리의 화려함 없는, 고요와 평안함으로 다가온다. 뚜렷하지 않은 선과 형체로 가득한 화폭 속의 색채를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은 조용히 그 본연의 침착함을 되찾게 된다”며 “몽롱한 붓질이 마련한 상상력으로 인도되어 우리들 자신이 마치 작품과 한 몸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고 평했다 .

임동승의 풍경화와 인물화는 ‘친숙한 것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서울 종로구 팔판동 리씨갤러리(대표 이영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5월11일까지 열린다. 02)3210-0467

yrlee@heraldcorp.com



임동승 ‘겨울 숲 2’(160x130cm 면 위에 유화물감). [사진제공=리씨갤러리]
임동승 ‘초상연구:구명동의를 착용한 여인’(65x53cm 면 위에 유화물감). [사진제공=리씨갤러리]
임동승 ‘양수리에서’(45x60cm 면 위에 유화물감). [사진제공=리씨갤러리]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