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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올 김영명이사장 “옛것이야말로 ‘새로운 창조’ 의 원천이죠”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서울 북촌의 빌딩숲 사이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한옥. ‘우리문화 지킴이’를 자임하는 재단법인 ‘예올’의 가회동 한옥이다. 올들어 새단장을 마친 이 한옥에서 김영명(57) 이사장은 부여의 전통미를 되살린 질박한 토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 간결하고 질박한 꽃병 어떠세요? 부여의 전통공예를 오늘의 미감으로 되살린 겁니다. 보통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무조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죠. 저 역시 ‘예올’에 몸담기 전엔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우리의 옛 것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없이 매료됩니다. 이 한옥 문틈으로 나즈막한 처마선과 푸른 대나무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맑아지죠. 전통은 보존할 대상인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대상’이란 생각도 들고요”

‘옛 것을 올곧게 지키자’며 출범한 문화재청 산하 비영리 문화재단 예올의 이사장으로 올초 취임한 김영명 이사장으로부터 문화유산 보호활동과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설립 11주년을 맞은 예올의 이사장에 선임됐다.

▷십여년간 예올의 이사로 있다가 올초 이사장이 됐다. 한국인들은 그 어떤 민족보다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문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뿌리인 전통과 문화유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계에서 큰 호응을 얻는 K-팝이며 싸이의 음악및 뮤직비디오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신명과 에너지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은 남다른 끼를 지녔고, 흥이 있었으며 미감도 특별했다. 옛 것을 무조건 고루한 것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원천으로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예올은 어떤 계기에서 태동했나.

▷지난 1996년, 월드컵 유치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등 외국서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그런데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방법을 찾다가 언니(김녕자 前 예올 이사장)와 한국 전통문화유산의 계승·보존을 담당하는 예올을 만들었다. 문화재 안내판 하나라도 제대로 잘 세우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동참하면서 사업이 확대됐다.


서울 가회동의 ‘예올’ 한옥에서 포즈를 취한 김영명 예올 이사장.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옛 것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차별화된 세계’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라 보는가.

▷자연과 교감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압축하고 싶다. 선비 문화의 단아함은 참 매력적이다. 외교관이던 아버지(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를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해외에서 보내 다른 나라에선 찾을 수 없는 고유한 우리의 미감이 더 잘 눈에 들어온다.



-예올이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들이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젊은 층, 다양한 직종의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 남성들이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예올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이 가입했으면 좋겠다.

-출범당시 재계 안주인 등이 중심이 돼다 보니 일각에선 좀 폐쇄적일 거라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예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전통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처음엔 학계및 문화예술계, 정치계, 재계 인사들이 힘을 합쳐 출범했지만 요즘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프로골퍼, 큐레이터 등 다양한 인사들이 회원이다. 



-‘부여, 지역문화 싹틔우기 프로젝트’도 개최했다.

▷백제의 수도 부여는 역사와 문화는 풍부하지만 전통공예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안타까왔다. 아름다운 백제문화를 대표할 부여의 상징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공호 교수와 학생, 장인(匠人)들과 부여 전통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꽃병·그릇·쟁반·가구·벽걸이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가장 신나 했다. 전통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에 널리 활용되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 285호) 보존 운동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져 훼손되고 있다. 그 보존방안을 놓고 논란이 많았는데 예올 등 문화단체와 문화재청이 나서서 암각화 전시장과 주차장은 일단 옮겼다. 그러나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물 부족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울산시가 여전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번 훼손되면 결코 되살릴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니만큼 서로가 뜻을 모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에게는 현대가(家) 며느리로, 정몽준 의원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맞다. 처음엔 내 명함이 없이 ‘아무개 부인’으로 불리는 게 좀 서운하고 그랬다. 또 재벌가 며느리다 보니 ‘엄청 특별나게 살 것이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어찌보면 당연한데 정말이지 특별한 게 별로 없다. 삶의 구비구비마다 희노애락이 끝없이 이어지는 건 누군들 똑같지 않겠는가. 



-정 의원과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하다. 첫눈에 반했나?

▷미국서 대학을 다니다가 교환학생으로 이화여대를 잠시 다니던 1978년 여름, 언니 소개로 만났다. ‘김영명이 없다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고들 하지만 실은 반대다. 내 키가 175㎝인데 요즘에야 키 큰 여자를 좋아하지만 예전엔 엄청난 컴플렉스였다. 남편이 꺾다리인 나를 구제해준 셈이다.



-힐러리 클린턴도 다닌 미국 동부의 명문 웰즐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는데.

▷고교 시절부터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미술이다. 그런데 내게 맞는 강의를 찾아다니다 어찌어찌 정치학을 전공하게 됐다. 정치학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정몽준 의원은 어떤 사람인가

▷연애시절 생일에 장미꽃을 건네기에 ‘아, 자상한 남자구나’하고 좋아했다. 근데 결혼하고 나선 꽃다발을 전혀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한지 20년쯤 됐을 때 ‘생일 땐 꽃이라도 해줘요’라고 했더니 그 후부턴 매년 꽃을 들고 온다. 또 김치 없인 밥을 못 먹고, 한국이란 나라가 최고라 생각하는 남자다. 또 새벽에 눈 뜨자마자 읽을거리부터 찾는 남자다. 고3인 막내 아들의 논술책까지 가져가 읽을정도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에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청운동 부모님 댁에서 결집했는데

▷아버님께서 새벽 6시에 아들들과 조반을 드셨기 때문에 늘 새벽별을 보고 다녔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요즘은 아버님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 아들들과 그렇게 매일 식사하시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말이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님께서 ‘수고했다’며 용돈을 주시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자녀가 넷이나 된다. 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2남2녀다. 막내는 뜻밖에 생겼다. 마흔에 아기를 갖고 초음파검사하러 갔더니 의사가 “아들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묻더라(김 이사장은 첫째가 아들이다). 무척 부끄러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장남과 막내 아들 나이차가 14살이나 된다. 그런데 낳길 너무 잘했다. 늦둥이 때문에 우리 부부가 젊게 사니까.



-부군께서 아내의 활동을 지원하는가? 예올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이 꽤 많은 편이다. 남편은 무척 부지런하고 검소한데 아버님의 DNA가 이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예올이 왜 사직단 정비 운동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취미는 무엇인가.

▷결혼 30주년이던 지난 2009년 남편에게 “앞으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고 선언하고, 3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시작한 게 사진이다.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 등록해 요즘도 화목 이틀간 나간다. 현대미술을 좋아해 가끔 전시장도 찾는다. 어쩌다 그림을 사곤 하지만 컬렉션이라 할만한 수준은 못된다.



-중년인데도 여전히 날씬하다. 비결이 무언가

▷짬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는 것 정도? 예전엔 남편과 테니스를 했는데 엘보가 생겨 못한다. 동작구 문화스포츠교실에서 스포츠댄스며 요가도 배웠지만 짬이 안나 요즘은 못한다. 집에서 실내자전거 타는 게 전부다. 자전거 타면서 책도 보고, 기도도 한다. 예올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도 요즘 내가 드리는 기도 제목 중의 하나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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