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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어지는 벚꽃처럼 아릿한
신념을 위해 죽음 불사한 무사....
[북데일리] “작가는 우리를 고요한 물가로 데려간다. 희미한 기척과 함께 바람소리가 들리고 어느덧 잔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엄청난 이야기가 눈앞에 밀려든다.” - 소설가 이즈인 시즈카 추천사

<저녁매미 일기>(비채. 2013)는 ‘여름 한철, 치열하게 살다 스러지는 저녁매미처럼’ 신념을 위해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중년 무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일본의 에도시대. 주인공 ‘슈코쿠’는 중년의 무사다. 그는 주군의 측실(첩)인 ‘오요시’와 밀통했다는 죄목으로 산골마을에 유폐되어, 주군 가문의 족보를 완성하고 십 년 후 할복을 명받은 인물이다. 남편의 죄목이 간통임에도 부인은 그를 의심하지 않고 자식들과 함께 유배지까지 함께한다. 게다가 그 마을의 농민들도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다.

이제 삼 년 후면 족보가 완성되고 슈코쿠는 할복해야 한다. 슈코쿠를 감시하러 유배지로 온 젊은 무사 ‘단노 쇼자부로’도 그를 첫 대면한 순간부터 고매한 그의 삶에 감동한다. 앞으로 삼 년 후면 죽어야 하는데 슈코쿠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터럭 만큼도 없었다. 그것을 수상쩍게 생각하는 쇼자부로에게 슈코쿠는 말한다.

“단노 공,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는 했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도 겁나지 않는다고 호언하는 것은 무사의 허세일 뿐. 나도 목숨이 아까워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중략)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합니다. 오십 년 뒤, 백 년 뒤에는 수명이 다하지요. 나는 그 기한이 삼 년 뒤로 정해진 것일 뿐. 하면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p 26~p27)

그의 말을 들어도 죽을 날을 받아놓고 하루하루 명 받은 가보를 편찬하는 심정이 어땠을지는 짐작키 어렵다. 그런 쇼자부로 앞에 슈코쿠는 ‘저녁매미 일기’라고 쓰여 있는 자신의 일기를 꺼내 놓는다.

“어찌하여 저녁매미입니까?”

쇼자부로가 의아해하자, 슈코쿠는 빙긋 웃었다.

“여름이 오면 이 부근에서 저녁매미가 많이 웁니다. 특히 가을기운이 완연해지면 여름이 끝나는 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로 들리지요. 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몸으로 ‘하루살이’의 뜻(일본에서는 ‘저녁매미’를 ‘하루살이’를 뜻하는 ‘히구라시’라고 함)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p30)

그의 일기를 살펴봐도 여전히 의문은 떠나지 않는다. ‘그는 왜 할복을 해야 할까. 오요시가 자객의 습격을 받던 날 밤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왜 자신의 생명을 구명하려 하지 않을까?’

쇼자부로는 자신의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가 혹시 누명을 쓴 게 아닌지 의문을 품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가문의 사람들이 거론되어 독자들은 혼동스럽기도 하지만,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누명을 썼음에도 할복의 명을 받들어 무사의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 슈코쿠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죽음 앞에서도 꺽이지 않는 자존심, 긍지, 명예. 그것을 중시하는 일본 무사들의 한 단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드라마틱한 가족소설, 연애소설, 성장소설, 그리고 미스터리소설의 재미도 함께 갖췄다.

활짝 핀 벚꽃이 하늘 하늘 떨어지는 봄날,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하다. 이 소설도 그렇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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