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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어머니 대 며느리, 여자의 적은 누구인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 김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불안, 감시에 대한 두려움, 실존의 고립감과 무력감을 냉정하고 집요하게 보여줘 온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을 잇는다.

작가는 이번 ‘여인들과~’에서 두 여자를 통해 대한민국 가정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해부해 보여준다. 어머니의 존재가 집안의 ‘어른’이나 ‘섬김’의 대상은커녕 병균이나 외계 생물체처럼 다뤄지는 모습을 현미경적으로 낱낱이 보여준다.

두 여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다. 침이 말라가는 여자(시어머니)와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버려진 여자(며느리)다. 5년 전 시어머니는 홈쇼핑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게 되자 육아와 집안일을 해줄 ‘연변아줌마’용으로 아들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시어머니는 여자를 대신해 아이를 키우고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지만 여자는 고마움은커녕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핑계로 용돈조차 줄여나간다. 손맛 좋은 시어머니가 반찬가게라도 열어 돈이라도 벌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일언반구 없다. 함께 산 지 5년이 지났지만 둘 사이엔 어떤 정도 없다. 손 한번 잡은 적도 없고, 박제처럼 몸에 손대길 꺼린다. 며느리는 눈곱만치 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여자 탓으로 돌린다. 그녀의 괜한 증오는 아이의 종기에 침을 바르는 걸 보고 여자를 더욱 병균 취급한다. 그녀가 시어머니를 새삼 징그럽다고 느끼게 된 사건은 여자가 침이 말라가는 증상이 생기면서다. 휴가를 내고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는 구강건조증이다. 그녀는 식상감을 주는 병명에 짜증을 내며 여자를 침 같다고 여긴다.

“마르고 있는 게 왜 하필이면 침일까. 그녀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눈물이 마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여자와 어째 어울리지 않았다. 과연 마를 눈물이나 남아 있을까 싶게. 여자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그녀는 목격한 적이 없었다.”(본문 중)

그녀의 모욕은 계속된다. “여자는 은근히 침과 닮은 데가 있었다. 여자의 몸에서 생성, 배출되는 여러 분비물 중 마르는 것이 하필이면 침이라서는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과 하찮게 취급되는 비중이나 가치 면에서 여자는 아무래도 침과 비슷했다.”

시어머니의 대응은 무대응이다. 그녀는 그런 시어머니가 화석인류인 인류 최초의 인간 루시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어느 날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여자에게 수돗물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따져 묻지만 여자는 말 한마디 없이 걸레질을 하고 아귀찜을 준비한다. 301호 여자가 물이 언제 나올지 아느냐는 물음에 여자는 오후 2시에 나올 거라고 대답하지만 2시가 넘어도 물은 나오지 않는다. 물이 예정된 시간이 돼도 나오지 않자 빌라가 들썩이고 결국 누군가 밸브를 잠가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람들은 범인으로 여자를 지목한다. 그 얘기를 듣고 여자는 마침내 집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포크레인이 파놓은 관처럼 생긴 공사 현장 구덩이에 몸을 누인다.

작가는 며느리의 까닭없는 시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짜증을 시시콜콜 쫓아가며 모멸의 언사를 뱉어낸다. 얼핏 며느리의 언어적 폭력에 시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자 역시 무언의 항거를 하는 중이다. 시어머니는 구덩이 속에 몸을 누임으로써 스스로 인류 최초의 인간, 루시로 돌아가고자 한다.

두 여자의 적은 누구일까. 작가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있지 않다. 며느리 역시 어떻게든 홈쇼핑 전화상담원이란 정규직 자리를 지켜보려 했지만 일회용품처럼 버려지는 현실에 동정적이다. 주위엔 얼마든지 대체해 쓸 수 있는 일회용품들이 널려 있고 그런 신참내기들을 작가는 신종 생물로 비유한다.

그렇다면 둘의 공존을 위한 작가의 진화론적 해법은 무엇일까. 김숨은 마지막에 그것을 흘깃 보여준다.

“어서 나오시라니까요… 어서요…. 애원은 점차 흐느낌으로 변해갔다.”(본문 중)

침이 말라가는 시어머니를 향한 흐느낌, 눈물이 말라가는 침을 채워줄지도 모를 일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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