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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십’ 이 우습다면…당신이 우스운거다
다른사람에 대한 정보가 떠돌며 사회를 좀먹기도 하지만…가십 듣고 전하는 사회생활의 긍정적 측면 깊이있게 부각
노벨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보잘것없는 시(詩)를 한 편 쓴 뒤 그 원고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보냈다. 당연히 돌아올 찬사를 그는 기다렸다. 그 시는 영국의 전설적인 크리켓 선수 렌 허턴에 관한 것이었다.

그 전문은 이랬다.

“나는 전성기 때의 렌 허턴을 알고 있었네. 먼 옛날이지, 먼 옛날.”

핀터가 보낸 원고를 받은 친구들은 평소대로 전화로 달려가 시가 “매우 훌륭하며 완벽하고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찔렀으며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 사람만이 감감무소식이었다. 핀터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를 받았는지 물었다. “물론 받았지.” 핀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친구는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실은 아직 다 읽지 못했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사소한 찬사에 집착한 가십이다.

가십은 과거로부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굴러다닌다. 가십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인간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십은 왜 사라지지 않고 더 힘을 얻는 걸까. ‘내셔널리뷰’의 발행인이자 인기 칼럼니스트인 조지프 엡스타인은 가십에 관한 모든 것을 ‘성난 초콜릿’에 담아냈다.

한때 가십은 게으르고 느른하게 주고받는 대화로 보잘것없고 비열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잘못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여자들이 가십을 나눈다고 간주됐다. 엡스타인은 가십을 이렇게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온 평가가 옳지 않음을 먼저 지적한다. 일상에서 중동의 평화 유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사소한 가십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타고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치명타를 입히기도 하는 가십은 스펙트럼이 넓다. 최근 화제를 불러모은 강원도 건설업자의 ‘성접대 의혹 사건’은 가십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알려지기를 꺼리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뉴스의 탐사 보도와 가십은 메커니즘이 같다.

 
“가십을 엄격하게 정의하자면, ‘누구의 관심사도 아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넓은 범주에 무엇이 들어가고 또 들어가지 않는지를 누가 말하겠는가? 가십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나 여자는 자제력은 훌륭할지 모르나 호기심이 결여되어 있고 인간성의 다양함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풍부한 인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루머와 가십은 다소 차이가 난다. 루머가 불특정의 듣는 이를 대상으로 더욱 널리 퍼지고 내용이나 방법도 덜 세밀한 반면 가십은 세심하게 선별된 특정 인물에게만 이야기되는, 다른 사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라는 점에서 루머와 다르다.

엡스타인은 가십의 기능에 주목한다. 단순히 교묘하고 장난스러우며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가십이 최근에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의 발전에 힘입어 사회를 좀먹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가십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현재 진행 중인 일에 대해 더 확실하게 지각할 수 있고 주위사람들과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십을 주고받는 일에 가담했더라면 사람이 얼마나 의지가 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꼭 알아야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도 가십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파벌이나 집단의 내부로 들어가고 싶어하는데, 그 방법으로 내부의 사람들과 열렬히 가십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행실이 나쁜 사람들에 관한 가십은 사회학자들이 말하다시피 공동체의 규범을 강요하는 가십이 되기도 한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등 뒤에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쁜 행동을 못하도록 잠재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가십은 사실, 가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가십을 전할 때는 다소 무관심한 척 얘기하고, 들을 때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가십은 새롭고 충격적인 게 많다. 가령 에드워드 8세가 왕위까지 내던지고 결혼했던 월리스 심프슨 부인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구강성교 전문가라는 가십, 에드워드 8세가 동성애자였으며 심프슨 부인이 실제로 남자였다는 얘기까지 가십의 집요함과 생산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저자는 가십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며 그 기능에 높은 점수를 매긴다.

종종 너무 많은 가십이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생을 파괴해버리는 것은 물론 그 사회의 분위기를 저하시키기도 하지만 평생 멋진 가십을 듣고 전하는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고 그는 고백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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