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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소설가 박완서의 행복이란,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가 있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인생의 목적은 결국 행복한 삶으로의 귀결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시대 명사들이 경험적으로 들려주는 행복은 이런 사전적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소설가 박완서, 윤후명, 고정욱, 시인 신달자,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황수관 연세대 의과대 외래교수, 손욱 전 농심 회장 등 22명의 명사가 말하는 경험적 행복론은 결코 행복이 산 너머 저쪽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 아픔 뒤에 발견하게 되는 고갱이 같은 행복 등 행복이 찾아오는 경로와 행복과 드디어 만나게 되는 때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소설과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 고 박완서의 행복은 소설가의 길에 막 들어선 새댁 같은 작가의 소박한 모습에 담겨 있다. 밤에 몰래 도둑질하듯, 맛 난 것을 아껴가며 핥듯이 글쓰는 행복이다. 작가는 “요바닥에 엎드려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고 말한다. 거기에 결정적인 행복의 소리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다.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 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쟤도 안 바꿀 것 같이 행복해진다.”

소설가 윤후명에게 행복은 일상의 새로운 발견에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으로 꽃구경을 오는 이유 같은 거다. “한꺼번에 경천동지 개벽하듯 와아 밀려드는 온누리의 꽃차례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작가는 살구꽃, 양귀비꽃, 복숭아꽃 하나하나에 소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소녀들의 눈길이 스쳤을 그 순간을 내 마음에 아로새겨야 한다고, 나는 다짐한다. 그렇게 사라졌을지라도 그 눈길을 다시 살리면 여전히 잎 피고 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겠기에. 나이 들면서 사랑이 잎 피고 꽃 피는 순간만큼 소중한 행복은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시인 장석주는 행복은 깨지기 쉽고 덧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일은 숭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행복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그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는 행복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햇빛 한 줄기, 소나무 숲의 향기, 아이의 건강한 웃음소리, 방금 구워낸 크루아상, 창가에서 울리는 편종 소리, 베트남 쌀국수, 다정한 키스의 순간들, 꼬리에 점박이 무늬가 선명한 나비…그러니 그는 행복하다.

‘웃음전도사’ 황수관 박사의 행복론은 과학적이다. 남을 위해 살 때 뇌속에서 옥시토닌 세로토닌 베타 엔도르핀 노르에피네피린 같은 행복 호르몬들이 분비된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은 현재의 행복도 즐겨야 하지만 앞으로의 행복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인 미래의 행복이다. 1958년생 생존자 중 남자는 43.6%, 여자는 48%, 즉 절반 가까이가 97세까지 살 것이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정년 후 남은 40여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인생 후반 설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일을 할 것인가를 확실히 정하는 것이다. 수입을 얻기 위해 일을 할 것인가,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사회환원적인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할 것인가를 확실히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달자 시인의 행복론에 이르면 행복은 자신을 열어놓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외국에 나가있는 딸이 선물해준 ‘행복’이란 이름의 곰인형을 끌어안았을 뿐인데 심장 한 쪽이 포근함과 충만감으로 가득차 올랐던 경험을 통해 시인은 행복은 냉정해도, 과묵해도 오지 않고, 입으로 불러야만 온다고 말한다.

시인의 행복 주문은 행복에게 말걸기다. ‘행복아 안녕’ 하고 말하면, 행복은 문밖에 움츠리고 있다 팔짝 뛰어든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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