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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세주의적인 이상주의자, 피아니스트 윤홍천의 음악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를 물으면 ‘연주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답해요. 하지만 콩쿠르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음악이란 평가할 수 없고 내가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피아니스트 윤홍천(30)의 말엔 자신감과 힘이 있었다.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지난해부터 국내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최근 솔로앨범까지 발매한 그를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야마하홀에서 만났다.

쇼팽을 가장 잘 연주하며 세심하지만 묵직하고 에너지 충만한 연주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그는 지난 2011년 독일 바이에른 문화장관으로부터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고 빌헬름 켐프 재단 최연소 동양인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윤홍천이 최근 발매한 솔로 독주 음반의 제목은 ‘앙코르(Encore)’. 잘 알려진 편한 곡 중에서 앙코르로 소개해주고 싶었던 친숙한 곡들을 선정해 앨범으로 꾸몄다. 그 중 현대음악가 마르코 헤르텐슈타인(Marco Hertenstein)이 윤홍천을 위해 작곡한 ‘음(Yin)’과 ‘양(Yang)’이란 곡과 인천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한 쇼팽의 야상곡 8번 라이브 음원이 눈에 띈다.


그는 “앙코르 곡은 현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 4월 교향악 축제때 연주한 쇼팽의 야상곡 을 가장 많이 기억해 앨범에 넣고 싶었다”며 앨범 수록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연주가 끝나고 앙코르로 뭘 할까 생각할 때 그가 주저 없이 꺼내들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쇼팽의 곡들이다.

“어느 작곡가의 곡을 즐겨 연주하기보다 그 작곡가와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쇼팽의 감성을 표현한다면 ‘염세주의적인 이상주의자’일 거예요. 그런 쇼팽의 감성이 저와도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앙코르는 4월 교향악 축제때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번과 쇼팽의 야상곡, 누나의 결혼식때 연주했던 리스트의 ‘헌정’이다.

윤홍천은 유치원 때 누나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같이 다니며 피아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하고 예원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웬일인지 마음을 잘 잡지 못했다.

“예비학교 들어간 이후 선생님들이 콩쿠르에 자꾸 내보내셨어요. 적어도 3개월은 같은 곡만 치잖아요. 하다가 흥미가 없어지고 연습하기가 싫을 때도 있었어요. 얽매이는 게 싫었거든요.”

갈팡질팡하던 그를 붙잡은 건 미국 유학이었다. 혈혈단신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하며 마음을 잡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새롭게 발견했던 건 우물안 개구리였던 자신이었다. 개성을 중시하고 화려하게 포장된 음악을 추구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에서 공부한 친구들은 이론적으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더욱 깊이있게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독일 유학을 결심했고 하노버국립음대에서 5년을 공부했다.

하지만 하노버에서의 시간은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에 대한 고민의 시기이기도 했다. 항상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콩쿨에서도 잘해야 하고, 선생님들의 마음에도 들어야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음악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6년, ‘내가 원하는 음악은 이게 아니다’라고 생각한 순간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의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였다.

“엄청 긴장하고 처음 오디션을 보러 갔죠. 기차,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했는데 해가 지고 있었어요. 양 옆으로 산이 있고 한가운데 물이 지나가더라고요. 산 위엔 눈이 있는데 휙 올라가는 구름을 보고 마음이 터지는 느낌이었죠. 여기서 맘껏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알프스 산 아래 위치한 학교에서 그는 새롭게 기운을 냈다. 한 선생님은 이런 가르침을 줬다. ‘예술엔 완벽이 없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 가장 완벽한 것이다.’라고.

“그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야 할 길은 콩쿨이 아니라 진정 스스로가 원하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요. 이제는 연주하면서도 ‘이게 맞는 걸까’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찾은 인생의 해답이라면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대한 얽매임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매일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그가 찾은 해답이라면 해답이랄까.

2009년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 졸업 이후 유럽에서 활동하던 그가 지난해부턴 한국에서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올 한 해도 11월까지 14번의 연주회를 가졌고 한국엔 6번이나 방문했다. 지난 24일 있었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는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고 미국에서 공부하며 뉴욕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올 한해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는 그는 내년 3월 29일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 슈만, 리스트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는 렉처 콘서트를 정준호 음악칼럼니스트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유럽에서도 서고 싶었던 무대에서 하고 싶었던 많은 레퍼토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윤홍천. 콩쿠르의 세계에 있는 그는 염세주의적이지만 음악의 세계에선 자유로움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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