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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는 글을 쓰고,남편은 그리고..제주 김품창부부 동화책 펴내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동화를 쓰고... 그렇게 정성을 쏟은 끝에, 예쁘고 아담한 동화책 두권이 출간됐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화가 김품창, 동화작가 장수명 부부가 함께 동화책을 출간했다. 두 사람이 펴낸 책은 제주이야기 시리즈 중 첫권인 ‘똥돼지’와 두번째 책인 ‘노리의 여행’이다.

아내가 글을 쓰고, 남편이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출간했다니 남들 보기엔 더할 나위없이 환상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두사람이 여섯 살배기 딸을 데리고 낯설고 물선 제주도로 처음 이주했을 당시엔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저 "좋은 작품을 하고 싶어" 제주도로 내려온 화가와, 남편 말을 무작정 믿고 따랐던 아내는 크나큰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쌀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부지기수다.

제주도는 농업이나 자영업을 하지않으면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종이를 마주한채 끝없이 붓을 놀리며 작업에 빠져든 남편 곁에서, 아내는 평생 먹고 살 일을 곰곰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러던 중 가장 잘 하는 일, 가장 좋아하는 일이 떠올랐다. 그 일은 바로 ‘동화를 쓰는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장 씨는 결국 작가로 등단하기로 마음먹고 펜을 들었다. 


피나는 노력에 설문대 할머니가 감동하셨던 걸까? 아내는 마침내 동화작가로 등단할 수 있었다. 문학잡지 공모에 당선되며 그 일로 살아갈 길이 하나둘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새내기 작가이지만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이 들어왔고, 출판사로부터 원고료 선금을 받아가며 동화를 쓰기에 이르렀다.
제주바다와 하늘을 아우르며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남편의 작업도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작품 전시회도 갖게 됐다. 이제 끼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됐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섬 제주에서 살 길을 찾은 부부는 자신들을 품어준 제주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싶었다.한반도에서 가장 멋진 땅이자, 풍부한 설화와 스토리를 지닌 매력덩어리 제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수집하기 시작했다. 동화작가인 아내는 이를 동화로 정성껏 직조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결국 아내의 등단 10년 만에 동화책 2권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제주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보자는 뜻에서 ’마주보기‘라는 출판사도 만들었다.

이번에 출간된 동화책 ‘똥돼지’는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인 돗통시(제주 특유의 화장실)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으로 빚어낸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탄생했던 돗통시는 그간 흥미 위주로 다뤄진 측면이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장 씨는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와 화산터에서 어렵게 살아야 했던 선조들의 생활풍습을 똥돼지 복순이와 주인집 어린이 동지를 통해 푸근하게 그려냈다. 


화장실인 통시에 갈 때마다 자기를 반가워하는 똥돼지 복순이를 아홉살배기 소녀 똥지(‘동지’를 집안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는 ‘더러운 똥돼지’라 부르며 밀쳐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똥지는 통시돌담을 무너뜨려 복순이를 집에서 쫒아내고야 만다.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복순이가 너무 귀찮았던 것. 그러자 동지 부모는 ‘돗거름’(돼지우리에서 퍼낸 거름)이 없어 올농사는 망치게 됐다며 한숨을 짓는다. 이에 잘못을 뉘우친 동지는 복순이를 찾아나섰고, 결국 이웃집에서 찾아냈다. 이후 동지는 복순이를 애지중지 아끼며, 노래까지 만들었다. “똥똥 똥돼지~, 동글동글 콩알똥 줄까? 물컹물컹 물똥 줄까? 똥똥 똥돼지~,우리 돼지 똥돼지~!”라는 노래다. 마침내 복순이가 아홉마리의 귀여운 새끼를 낳자 동지는 마치 자신의 새끼인냥 뛸듯이 반가워한다.

이 책은 풋풋한 황토색과 검정색을 주조로, 제주의 가옥과 논밭, 통시와 똥돼지 복순이를 제주의 현무암처럼 질박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동지가 입은 빨간 셔츠는 액센트처럼 책에 활기를 더해준다. 돼지 이야기가 제주 시리즈의 첫 권으로 등장한 것은 “화학비료가 널리 보급되며 이제는 사라진 돗통시야말로 척박한 제주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임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제주이야기의 두번째 책인 ‘노리의 여행’은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을 시작으로 ‘소암 현중화기념관’까지 이어지는 ‘작가와의 산책길’이라는 서귀포의 테마코스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엮은 책이다. 황소그림으로 유명한 국민화가 이중섭, 한국 서예계의 큰 별 소암 현중화, 제주가 나은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 ‘생활 속의 중도’라는 연작으로 잘 알려진 이왈종 화백의 이야기가 한 권의 그림책에 오롯이 실려 있다. 또 이들 유명작가의 그림과 글씨도 수록돼 ’제주 작가들의 작은 화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부록으로 서귀포 작가들의 미술관과 전시관을 둘러보는 산책로가 곁들여져, 제주의 문화탐방코스를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김품창, 장수명 부부는 “비록 우리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경상도로 제각각이지만 제주도에 정착한지 12년째에 접어드니 ‘제2의 고향’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제주도가 간직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해서 글과 그림으로 정성껏 선보일테니 기대해달라”고 밝혔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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