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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개과천선한 스크루지, 그 후에 어떻게 됐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일명 스크루지 이야기는 세기를 달리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남도 사랑할 줄 모르는 구두쇠 스크루지가 세 혼령을 따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과 맞딱드리며 삶의 변화를 겪는 과정은 누구나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작용한다.

한국의 젊은 작가 김경욱, 윤성희, 최제훈이 많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이후가 궁금하다면 먼저 최제훈의 소설에 눈길을 줄 만하다. 최제훈의 ‘유령들’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속편 격이다. 원작의 등장인물과 배경은 그대로지만 여기에 의외의 인물이 추가됐다. 유령을 잡는 빌 머레이다. 크리스마스 정령들을 만난 후 새 사람이 된 스크루지는 반 년 만에 다시 옛날 스크루지로 돌아간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던 그의 선의를 왜곡시키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엔 유령 잡는 사람을 고용한다.

김경욱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세 명의 혼령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스크루지 대신 내란음모죄로 감방에 갇힌 사형수 K가 등장한다. 어둡고 차갑고 좁은 감방에서 K에게 현실은 오로지 발자국으로 인식된다. 간수의 발자국 소리는 그에게 삶과 죽음을 선언하는 망치 소리다. 감방에서 정확하게 스물세 걸음에서 왼쪽으로 가면 교수대, 오른쪽은 운동장이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둠속에서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희망을 건다. 적어도 그날엔 사형을 시키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 밤, 잠이 잠을 쫓아내는 그 밤에 그에게 혼령이 찾아온다. 난쟁이와 거인, 노란손이 차례를 그를 이끈다. K는 일본인 선생에 저항하는 어린 시절 K를 만나고, 거인의 손에 이끌려 1980년 5월 도청 건물로 들어간다. K는 거기서 죽음을 각오한 풀잎 같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노란손에 이끌려간 K는 파란 들판을 걸어 맹인 노인과 소년이 낮고 작은 한 무덤 묘비명을 읽고 있는 걸 본다. K도 묘비명을 읽는다. 묘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K다.크리스마스이브, 아직 밝지 않은 밤, 잠을 깬 K는 책을 꺼내든다. 어둠에 눈 먼 자들의 밤의 시대를 밝혀줄 이야기를 찾는다.

윤성희의 ‘날씨이야기’는 유령을 소재로 한 디킨스에 한 자락 걸치지만 유령의 성격은 딴판이다. 윤성희의 유령은 삶의 너머에 있는 존재라기보다 그리움의 대상, 나의 투영이라는 점에서 두렵거나 낯설지 않다.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뒤 얼이 빠진 언니는 누군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윗집 여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걸 즐긴다고 여긴다. 일상이 무너진 언니는 삶의 빈 시간ㆍ자리를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고, 새로 짓는 아파트가 올라가는 걸로 채운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나온 신작 단편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는 ‘크리스마스 캐럴’ 외에 ‘두 도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다섯 편의 소설과 ’올리버 트위스트’를 변주한 박성원의 소설 등 9명 작가들의 단편을 담고 있다.

디킨스의 ‘두 도시’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다섯 편의 소설은 보다 폭이 넓다. 디킨스가 파리와 런던을 배경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그려냈듯, 작가들은 서로 다른 시ㆍ공과 차원을 상상력으로 구축해냈다. 김중혁은 부산과 서울, 하성란은 1980년과 현재의 광주, 백가흠은 광주와 아테네, 배명훈은 지구 도시를 재현해 만든 우주를 유영하는 두 개의 도시, 박솔뫼는 현실의 도시와 꿈속의 도시를 오간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박성원의 ‘소년’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입양체험을 신청해 한 고아 소년이 나흘 동안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몸에서 비린내가 나고 가방 안에 단추나 문고리 같은 쓸모없는 쓰레기들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 몇 권의 책을 암송할 정도로 되풀이해 읽는 소년은 왠지 섬뜩한 데가 있다. 남편은 무심하게 소년을 대하지만 아내는 불안하고 꺼려진다.

당시 사회와 모순을 단순하고 깊게 보여주는 디킨스의 매력이 한국 작가들에 의해 더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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