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비움으로써 더욱 채운다..설치미술가 임충섭의 세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재미작가 임충섭(71). 그는 한국 설치미술의 개척자이다. 임충섭은 ‘설치미술’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지난 1960년대 말 설치미술의 출발을 알렸다. 더구나 그의 작업은 서구현대미술에 등장한 설치미술의 시작점과 ‘동시대성’을 띠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양미술의 뒤를 쫓기 바빴던 과거 우리 미술과는 달리, 같은 선상에서 스타트라인을 끊으며 끝없는 모색을 시도했던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설치미술가 임충섭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회고전을 개막했다. 지난 12일부터 ‘임충섭:달, 그리고 월인천지’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 설치미술의 50년 궤적을 한 작가의 작업을 통해 돌아보는 자리다.

임충섭은 197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40여년간 해외에서 작업해온 원로작가다. 도미 후 그는 뉴욕 휘트니미술관 연구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퀸즈미술관 작품공모에 선정되며 새로운 예술을 앞장서 추구했다. 오랜 뉴욕생활에도 불구하고 임충섭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고향(충북 진천) 풍경에 작업의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그 시절 겪은 어머니의 죽음은 작가에게 끝없는 그리움과 함께 예술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이라는 이질적 문화의 경계에 놓이게 된 상황은 그의 작업의 원천이 됐다.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낯선 환경과 풍경은 작가로 하여금 기존의 관습적 시각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이로써 임충섭의 미학은 동과 서, 초월과 합리를 오가며 그 접점에서 싹트며 그 어느 작가와도 유사하지 않은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설치작업 외에도 평면, 드로잉, 오브제, 영상 등 다양한 매체실험과 조형방법을 오갔다. 따라서 전시 또한 이를 총망라해서 보여준다. 시대별 주요 작품과 미공개 작품 등 총 70여점이 공개된다.

특히 고국에서의 회고전을 위해 이번에 새롭게 시현한 ‘월인천지(月印千地)’는 달의 운동을 보여주는 영상, 전통농기구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 한옥 정자를 기반으로, 자연과 문명에 ‘다리’를 놓은 환상적인 작업이다.
영상과 설치가 복합된 이 작품은 커다란 나무구조물과 실뭉치 사이를 비추는 한줄기 빛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마음의 빛이자, 달빛, 첨단장비에서 나오는 빛을 두루 포함해 이채롭다. 그 빛은 스스로 변화하며 관객의 개별적 기억과 경험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무수한 ‘빛’을 돌아보게 한다.

임충섭은 “내 작업은 자연과 현대문명을 가로지르며 그 경계를 비춤과 동시에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끝없이 오가며 그 사이의 관계맺음을 모색한 그의 작업은 그 명징함과 독자성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아울러 자기 비움과 절제를 통해 타자와의 열린 소통, 만남을 지향하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 전시는 내년 2월 24일까지.

/yr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