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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베첸토 같았던 박종화의 삶, 그 안에 흐르는 유목민의 피
피아니스트 박종화(38)는 어린 시절부터 모험심 가득한 아이였다.

“모험적인 아이였어요. 어렸을 적 부산에서 살 때 부모님이 주신 튜브를 가지고 바다에 들어갔죠. 튜브를 가지고 가니 안 가라앉아 여동생과 전 무서울 게 없었어요. 계속 수영해서 가다 보니 안전선을 넘어버렸고 부모님은 저와 여동생을 못 찾아서 난리였는데 전 너무 재밌었어요.”

박종화의 삶은 언제나 모험과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하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냈던 그가 몇 년 전 한국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더니 얼마 전 ‘노베첸토’란 연극에 출연했다.

피아니스트이자 교수로서 잠시 연극 무대로의 일탈을 경험했던 박종화를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였던 지난 6일 서울대 음대 그의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바닥의 온돌이 인상적이었던 그의 연구실은 눈보라 몰아치는 바깥 날씨와 달리 포근했다. 첫 질문에 그는 웃으며 살짝 서툰 우리말로 “새로운 경험이었고 배우들과 공감하게 됐던 좋은 경험, 예술가의 삶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하다 연극을 하며 다시 예술가의 삶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신선함을 얻었다는 그. 기대 이상으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며 만족해했다. ‘노베첸토’는 6회 공연이 전부 매진됐다.

“말로 표현 못하는 것들을 음악이 순식간에 표현할 수 있잖아요. 연극에 음악이 나오고 관중들이 이야기 속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이 느껴졌어요. ‘우리와 같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특이하게도 극 중에선 2번의 즉흥연주가 있었다. 노베첸토가 아기때 버려진 장면에선 브람스의 자장가, 두 번째 폭풍 장면은 매일의 조화에 따라 연주가 매번 달라졌다.

피아노 연주와 배우 조판수의 대사가 대화처럼 이어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탁구공을 현에 두며 다른 음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현을 북채로 치기도 했다. 북채는 직접 생각했고 탁구공은 존 케이지의 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데 연극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을까. 그는 “연극 경험은 없지만 보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가 좋아했던 연극은 ‘리어 왕’,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었다. 보스턴에 영국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투어하러 오면 빠지지 않고 보러갈 정도였다. ‘햄릿’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시기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이었다.


“주변엔 외국인 친구들뿐이었지만 한국인으로 살았고 느낌은 미국인인데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곳에 속하는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소속감이나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고민했었죠.”

일본,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서 삶을 보냈던 그의 삶은 방황한 노베첸토와도 같았다. 노베첸토가 배를 타고 세계 여러나라의 승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면 그는 자신이 직접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왔다. 모험심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피아노에도 오롯이 녹아들었다.

“처음 일본에 유학 갔을 때도 재밌었거든요. 미국에 10년 동안 있었던 것도 재밌어서 그랬던 거고요. 여행을 하고 방황한 후에 많은 것을 봤습니다. 스페인에 가서 플라멩고도 접했고 곡을 연주할 때 직감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고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전세계를 돌며 살던 삶, 노베첸토처럼 방황은 어느새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있었다.

“제 안에 그런 방황의 DNA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 박종화는 “음악가들은 방황을 해야 한다”며 바흐,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 많은 음악가들이 방황하는 인생을 살았었다고 설명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그의 삶이 항상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외로움도 있었고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음악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우연찮게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들에 의해 음악을 계속하게 됐다. 세 살 반에 시작한 피아노. 5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어머니도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그의 여동생도 피아니스트다.

지난 달 앨범을 발매하고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박종화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앨범에 담았고 연주를 가졌다.

“라흐마니노프는 저의 영웅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해요. 피아노에서 나오는 멜랑콜리(우울)함 속에 또 아름다움이 있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해요. 그의 음악은 제가 고통스러울 때 치유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죠.”

라흐마니노프도 그와 비슷한 나이에 콘서트 피아니스트였고 그도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의 길을 걷고 있다.

향후 그는 한국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단순한 노래들을 클래식 음반으로 만들 예정이다. 연극 ‘노베첸토’에서도 ‘고향의 봄’을 선보였고 11월 콘서트 때도 ‘학교종’과 ‘고향의 봄’을 연주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 음대 교수직을 맡으며 정착한 음악 유목민 박종화. 하지만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혈관에 흐르는 유목민의 DNA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지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제공=BOM Ar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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