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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칼럼 - 허정범> 안전 없는 운전은 폭력
①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출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② 차간 거리는 1인치도 두지마라. 그렇지 않으면 옆 차가 바로 끼어든다.

③ 시원하게 달리려면 레미콘 차를 사라. 모든 차가 비켜준다.

④ 모든 차선을 헤집고 다녀라. 차선 지키다간 앞으로 가기 어렵다.

⑤ 막히면 경적을 울려라.

⑥ 끼어들어라. 손만 흔들어주면 되니까



미국의 어느 자동차 잡지의 한국 특파원이 소개한 운전법이다. 만약 미국 특파원의 이 풍자에 웃음이 나왔다면 그래도 운전문화란 저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는 우리의 운전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평소에는 제법 선비 같은 풍모를 보여주는 사람마저도 운전대만 잡으면 전사로 변하게끔 만드는 게 우리의 운전문화다. 경적 소리 한 번 듣기 어려운 도로에서만 운전해왔던 외국인의 눈에 그런 우리의 운전문화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자동차보험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처럼 낙후된 우리 운전문화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안전의식이 결여된 난폭한 운전문화는 결국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인구 10만명당 11.3명이 사망한다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보여주고 있는 통계로 입증된다. 사망률이 낮은 국가의 경우 사망자 수가 평균 2~3명에 불과한 것과는 너무도 큰 차가 난다.

이 같은 결과는 평소 안전운전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 크다. 아직도 답답하다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운전자가 많다.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TV를 시청하기도 한다. 횡단보도 정지선에 맞춰 모든 차가 일렬로 정지하는 모습은 필자가 가장 보고싶어 하는 도로 위 풍경이다. 안전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사항만 지켜도 우리의 교통문화는 금세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만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물론 우리의 운전문화가 과거에 비해 나아진 점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도 2000년에 비하면 배나 줄었다. 차량 1만대당 사망자 수도 2000년 8.5명에서 현재는 2.8명으로 감소한 상태다. 이런 점에서 분명 우리의 운전문화는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유독 정체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음주운전이다. 정말이지 음주운전은 그 어떤 것보다 위험한 행위임에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술에 관대한 문화 탓인지 음주운전에도 비교적 관대한 게 현실이다. ‘잠깐만 운전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술을 먹은 채 운전대를 잡기 일쑤요, 함께 술을 마신 사람도 그런 행위를 묵인한다.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적 피해와 재산 손실 사례를 들어 계몽이 이뤄지고 있지만 ‘딱 한 번만’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운전자들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 곧 연말이다. 어느 때보다 술자리가 많은 때다. 음주운전은 보험으로도 구제받지 못하는 ‘범죄행위’다. 음주운전이 개인적 실수가 아닌, 자동차를 이용한 폭력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우리도 높은 수준의 운전문화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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