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3…이색수험생 2인의 포부
서울 일성여고 3학년 조일행 씨동생들 돌보느라 배움기회 놓쳐
남편 격려에 주경야독 수시합격
늦깎이 수험생 조일행(52ㆍ여ㆍ사진) 씨는 요즘 손에서 EBS 수능 교재를 놓지 않는다. 교재 귀퉁이는 이미 까맣게 손때가 묻었다. 수업시간에 받은 수능 기출 문제지는 몇 번을 풀어보고 외우느라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중ㆍ장년 여성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인 서울 일성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조 씨에게 이번 수능의 의미는 남다르다. 2009년 4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중학교에 입학한 후 밤낮없이 공부 해 온 지난 4년의 결실을 맺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조 씨는 충남 예산의 한 농촌마을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그의 학교생활도 막을 내렸다. 17세에 홀로 상경해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동생들 등록금을 마련했다.
24세 꽃다운 나이에 만난 남편은 6남매 중 외아들이었다. 참 얄궂은 운명이었다. 다섯 명의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모셨고 두 딸을 키웠다. 배움의 꿈은 또 접어 둬야 했다.
2009년 인천의 한 주부학교에 입학해 중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안 하면 뭐할 거냐. 열심히 해 봐라”는 남편의 한 마디가 계기가 됐다.
공부를 시작한 뒤 왠지 모르게 세상이 밝아졌다. “예전엔 못 배운 내 자신만 탓했어요. 괜한 생각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조 씨는 수시 전형을 통해 부천대 부동산금융정보과에 이미 합격했다. 수시합격자는 정시 지원을 할 수 없지만 수능 시험 자체가 또 다른 도전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대학에 입학하면 사회복지나 청소년지도학도 공부해 볼 계획이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바로 잡는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 조 씨의 새로운 꿈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지금 하는 공부가 또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전 이제 절반을 조금 지났을 뿐이니까요.”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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