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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범죄 기획 2회]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 누가 보상하나?
[헤럴드경제= 민상식 기자]서울에 사는 20대 여성 A 씨. 그는 우울증에 걸렸다. A 씨는 지난해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주위에 소문이 퍼질까 봐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 이후 매일 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 잠에 들더라도 성폭행 피해 당시 상황이 자꾸 꿈속에 나타나 진통제를 먹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A 씨는 우울증에 빠졌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20대 여성 B 씨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10년 전인 초등학생 때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종교인인 동네 아저씨가 기를 준다며 강제로 입 맞추는 등 성추행한 것이다. 그 일 이후 B 씨는 지하철에서 남자가 옆에 앉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엘리베이터에서 남성과 둘이 타면 식은땀이 흐른다. 성인이 된 이후 만나게 된 남자친구의 애정행위에도 거부감을 드러냈고 결국 헤어지게 됐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성범죄 피해 당시의 기억이다. 피해 여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으로 우울증, 트라우마(외상후 증후군) 등에 시달리며 고통속에 살고 있다.

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성폭행을 당한 여성 20명 중 80%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성폭행 미수의 경우에도 피해 여성 41명 중 55%가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밝혔다.

정신적 장애를 호소한 피해 여성 204명 중 21%는 계속 그(성폭력 당한) 생각이 난다고 답했다. 16%는 자신에 대한 실망ㆍ무력감ㆍ자아상실을 갖고 있고, 매사에 불안ㆍ우울증을 느끼는 여성도 13%였다.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한다는 대답이 7%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여성도 3%였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여성 23명 중 38%는 성폭행 이후 성관계가 두려워지고, 성관계를 할 수 없는 등 성생활에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일상생활에서도 피해 여성 337명 중 12%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생겼다고 답했고, 11%가 신변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범죄 피해자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겼지만, 피해 여성들은 주위의 부정적 시선과 범죄를 빨리 잊으려는 마음에 정신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옷차림에 문제가 있었다’ 등으로 성범죄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숙 여성ㆍ아동폭력피해 중앙지원단장은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것 자체가 성범죄 피해 당시 기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정신적 치료를 피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를 통해 의료비 지원 및 치유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한 피해자는 1만1781명이다. 지난해 성범죄 피해자가 20만명(추산치)인 것으로 미뤄보면 피해자 중 약 6%만이 정신적 치료를 받은 셈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김정숙 단장은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트라우마가 평생 가는 경우가 많고, 성폭력을 당하면 장기간에 걸쳐 심리적 후유증이 증폭된다”면서 “물리적인 치료 이후 우울증, 트라우마 등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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