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전직 운동선수 ‘어둠’에 스카우트 되다
승부조작 · 조직폭력 · 납치 · 협박까지…운동밖에 몰랐던 그들의 불행한 ‘인생2막’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운동기계’ 만드는 학교체육 수업은 뒷전
대입·프로行 실패땐 진로 좌절 범죄의 길로

체격 검증된 선수출신 조폭서 유혹의 손길
위압적 운동부 문화…인성교육 소홀도 한몫
사회와 단절된 합숙소 ‘일탈의 교실’ 역할도


#지난 2007년 SK와이번스로 입단해 고교야구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주목받은 위모(26) 씨. 그는 ‘퍽치기(행인 때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강도 수법)’와 절도 등의 범행 전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구단을 떠났다. 군대를 다녀온 위 씨는 부산의 대표적 폭력조직인 ‘신20세기파’에 들어가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9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실형(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축구계에서 퇴출된 국가대표 출신 김모(28) 씨. 김 씨는 전직 프로 야구선수 출신 윤모(26) 씨와 강남의 고급 빌라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훔친 뒤 40대 여성을 납치한 혐의로 구속됐다. 거액을 빌려 사업을 벌였다가 잘못되자 이를 갚기 위해 범행을 한 것.

스포츠의 축제 올림픽이 한창이지만 한국에선 유명 운동선수들의 범죄행위로 일어난 파문이 가라앉질 않고 있다. 프로축구ㆍ배구의 승부조작은 물론 전직 운동선수들이 범죄에 빠지거나 조직폭력배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운동선수 출신자들은 왜 범죄 유혹에 빠지는 걸까.

▶운동만 잘하면 된다고?=학생 운동선수들은 대개 학교 수업을 등한시한다. 우리나라 학생 운동부는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운동 기계를 만드는데 주력해왔다. 특기자로 대학가려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만이 목표다. 운영 시스템 자체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체육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학생선수의 수업 이수율’은 중ㆍ고등학교를 통틀어 69.9%다. 중학생의 경우 81.1%이었던 수치가 고등학생이 되면 58.5%로 현저히 떨어진다. 올라갈수록 수업을 안 하니 성적도 곤두박질이다. 성적 하위 30%에 머무는 비율이 중학생은 76.4%, 고등학생은 85.3%(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조사)나 된다. 과목별 평균은 중학생 53점, 고등학생 46점에 불과했다.

초등생 때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펜싱을 한 뒤 현재 서울 시내 모 대학 교직원인 김상호(42ㆍ가명) 씨는 “인기 운동종목 학생선수는 거의 수업에 안 들어간다”면서 “이런 아이들이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군에 입대하거나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용식 체육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선수들이 공부를 안 한 상태에서 선택할 진로가 거의 없다. 대학특기자로 가는 것 말고는 없다”면서 “은퇴한 학생선수에 대한 정부의 생활지원 대책도 없다. 대학 졸업하고 갈 만한 곳도 운동부 코치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니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거나 대학입학ㆍ프로입단에 실패하면 할 수 있는 게 배달원이나 단순 노동에 국한된다. 일에 만족을 못하니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조폭들의 영입 1순위 전직 운동선수=‘신20세기파’의 주요 타깃은 고교 시절에 야구나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 전직 운동선수였다. 조직적으로 접근해 학생선수들을 영입해 왔다.

서울 혜화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선수 출신은 체격이 좋기 때문에 폭력조직의 유혹이 많다. 또 쉽게 돈을 버는 걸로 알아 폭력 등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 역시 “대개 학창시절 운동만 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범죄에 잘 빠진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폭력조직의 생리는 제일 막내기수가 그 밑의 기수를 뽑는 식이다. 운동부 생활을 했던 조직의 막내들은 결국 자신의 운동부 후배들을 자연스럽게 조직으로 끌어들인다. 학생시절부터 감독 코치 등이 이런 점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합숙소는 범죄 배우는 곳?=합숙소 제도가 범죄의 전파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학교생활과 또래문화,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되기 때문에 일탈행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신ㆍ신체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전직 축구선수로서 초등학교 때부터 합숙소 생활을 했던 최재영(29ㆍ가명) 씨는 “운동부 합숙소에서 1, 2명만 잘못된 행동이나 범죄 행위를 하더라도 팀원 전체가 이를 따라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이용식 연구위원은 “초등ㆍ중학교의 경우 합숙소 생활을 하면 안 되고 고등학교도 관계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난해 진행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의 경우 15~20%, 중학교는 30% 이상, 고등학교는 50~60% 정도가 아직 합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체육대학교가 실시한 지난해 신입생 대상 자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해 입학하는 한국체대 신입생 600여명 중 3~5% 정도가 합숙소 생활을 하면서 폭력을 당했거나 범죄행위를 목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체대 관계자는 “합숙소 생활에서 범죄를 배울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학생선수에 대한 인성교육 소홀=위압적인 운동부 분위기가 선수의 인격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 학교 운동부의 경우 대부분 대회 성적을 내기 위한 기량 향상에만 치중할 뿐 제대로 된 인성교육에는 대부분 무관심하다. 승리제일주의와 과도한 훈련이나 경쟁이 운동선수의 정신과 육체에 치명적 상해를 입힌다.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하지 못하고 불법이나 범죄에 무감각해진다. 교육당국의 책임도 없지 않다.

전직 펜싱선수 김상호 씨는 “중ㆍ고등학교 당시에 따로 마련된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없었고 선배나 교사로부터 성공이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은게 고작이었다”고 밝혔다.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지난해 고교와 대학 학생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사설 도박사이트를 경험한 학생이 상당했다”면서 “인성교육의 부재가 도박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양래 체육과학연구원 연구위원도 “학생선수들이 범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린 선수들부터 올바른 인성교육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상식 기자/ms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