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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공부보다 닫힌 마음 열어야죠”
보호관찰 소년들의 희망 ‘드림공부방’ 신인식 팀장
법원 공익요원 13명 모여 멘토役
검정고시 합격자 배출 성과 뿌듯


지난 3월이었다. 며칠째 지영(가명)이가 공부방에 나오지 않았다. 신인식(25) 드림공부방 팀장은 걱정되는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3시였지만 수화기 너머 술취한 지영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한테 관심 없으니까 전화 끊으쇼.”

학교에서 소위 ‘짱’으로 통한 지영이는 애초부터 학교에 다닐 생각이 없던 아이였다. 중학교도 일찌감치 그만뒀다. 마지못해 공부방에 나온 지영이는 처음에 결석을 밥 먹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방에 나와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멘토인 신 팀장 덕분이다.

신 팀장은 지영이의 고민을 상담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줬다. 이성에 관심이 많은 지영이에게 “공부 못하면 시집도 못 간다” 놀리며 공부를 유도했다. 신 팀장은 “지금은 오히려 먼저 와서 모르는 것 좀 가르쳐 달라고 조를 정도”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서울고등법원 공익근무요원 13명은 지난 1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멘토가 돼 주기로 뜻을 모았다. 서울가정법원의 협조로 3곳에 공부방을 열었다. 이름하여 ‘드림 공부방’이다.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았거나 학업에 소홀했던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청소년들이다.

광진구 드림공부방에서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선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가정법원]

출발은 쉽지 않았다. 공부방 문을 열었지만 결석자가 많았다.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할 정도로 생활관리가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멘토가 공부방에 나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수신을 거부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공익요원들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공부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복불복 게임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일에 집중했다. 배인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형편 탓에 놀이공원이나 극장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며 “여러 문화체험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적응을 도와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학생들과 멘토는 서로 허물없는 이야기까지 나눌 정도가 됐다. 자연스럽게 공부 얘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차비가 없는 아이들은 걸어서라도 공부방에 올 정도로 열성을 보인다. 한 아이는 올 초 폭설이 내리던 날 슬리퍼를 신은 채 먼 거리를 걸어와 멘토들을 감동시켰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검정고시에서 두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오는 8월에는 6명이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이다. 공부방 사업 자문을 맡고 있는 이명숙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검정고시에 통과한 아이들은 벌써부터 대학생활을 꿈꾸고 들뜬다”며 “아이들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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