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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침대사진은 뭐지? 알쏭달쏭하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도대체 저 침대 사진은 뭐지? 잔뜩 구겨진 게 침구업체 광고 사진은 아닌 것같고... 새로 시작한 이동통신사 광고시리즈인가?"

지난주말 서울 시청앞 태평로빌딩에 내걸린 침구 사진을 본 이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두명의 사람이 막 자고 일어난 듯한 침대를 찍은 흑백 톤의 대형사진이 난데없이 빌딩에 걸려 있으니 도대체 무슨 사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한구석에 설명이라도 붙어 있다면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카피 한쪽, 설명 한줄 없다. 도대체 무슨 사진이람?

이 사진은 38세의 나이로 요절한 쿠바 태생의 미국의 현대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작품이다. 일명 ‘침대 빌보드’(옥외 광고판 작업)로 통하는 이 작품은 태평로빌딩 외에도,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건너편의 6층짜리 건물 옥상과 호암아트홀 빌딩, 신촌 연세대 정문 앞 터널 등 서울 시내 여섯 곳에 설치돼 있다. 특히 명동으로 들어서는 신세계 앞에 설치된 작품은 행인들의 눈에 가장 띄는 곳에 설치돼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삼성미술관 플라토(부관장 안소연)는 예술가들 사이에 널리 사랑받는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을 열며 빌보드 작품 여섯 점을 도심 곳곳에 내걸었다. 이 작품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잠자리를 찍은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사진이다. 이번에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을 대여한 재단측은 이들 사진을 6점, 또는 12점씩 한벌로 내걸도록 했는데 이는 반복과 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담보하려는 작가 작품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물론 현대미술을 전공했거나, 특히 개념미술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일련의 이 사진을 알아채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곤잘레스 토레스 작업의 거리 설치는 이미 미국 등 해외에서는 시도되었던 바 있다. 



삼성미술관 플라토(옛 로댕갤러리)는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작가이나 19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전을 6월21일부터 9월28일까지 개최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Double’이라 명명된 이번 전시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요절하면서 현대미술의 신화가 된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작품 44점이 내걸린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쿠바 태생이다. 쿠바에서도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페인을 거쳐 푸에리토리코로 이주했고, 1979년 미국의 뉴욕에 발을 디뎠다. 가난한 제 3세계 이민자였던 그는 게다가 성적 소수자였다. 주변부 인물 중에서도 가장 주변부적인 인물이었던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옥죄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미국 뉴욕의 번듯한 ‘주류미술계 시스템’을 활용해 그 관습을 스스로 깨뜨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 제3세계 이민자에 대해 엄혹하기 이를데 없던 1980~90년대 시기를 강력한 예술의지로 맞서며 독자적인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해나간 것이다. 



‘인간 삶이 유한하고, 사랑도 유한하듯 예술에서도 고정된 관념과 기념비성은 없다’고 본 작가는 작가의 전권을 부정하고, 관객의 참여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의미가 달라지는 작업을 펼쳤다. 때문에 불과 8년이라는 짧은 작품활동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작가 보다도 그는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오늘날까지도 세계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과 회고전이 열리고 있을 정도로 현대미술사에 신화적인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전시에는 사탕, 전구, 한 쌍의 벽시계와 거울, 퍼즐, 구슬커튼 등 작가의 일련의 대표작이 망라됐다. 작품들은 외형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현대미술이 다루어야 할 공공성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제안을 드러낸다. 아울러 사랑과 죽음이라는 매우 사적인 삶도 함께 보여준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자신과 8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연인 로스 레이콕이 일찍 세상을 타계하고, 자신 또한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로서 시한부 인생을 살게되면서 더욱 시적이고, 명상적인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소멸을 작품화했다. 



특히 플라토와 삼성생명 서초타워 로비에 설치되는 ’무제’<로스모어II>(1991)는 끊임없이 채워지는 재료(사탕)와 관객에 의해 확장되는 작품의 해석(원하는 사람은 사탕을 가져갈 수 있고, 맛볼 수 있다)은 재생과 영속에 대한 갈망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작가는 또 1980년대의 사회,정치비평적 작업도 전개했으며 죽음이 임박하면서는 더욱 소멸과 존재론을 다루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시적인 은유와 정치적인 발언을 넘나들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동일한 작품의 일부를 한남동 리움에 반복적으로 설치해 ‘Double‘이란 전시주제를 심화시켰다.

안소연 부관장은 "현대미술의 의미와 자기성찰의 측면을 제시한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의 의미로서 공유되며 후배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며 "일반 관람객들도 작가의 작품에 참여하고 소유(출품작인 포스터와 사탕을 가져갈 수 있다)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람료 2000-3000원. 월요일 휴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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