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쏟아지는 녹색 광선들
거울·유리 통과하며 무한반사
시작·끝 알수없는 카오스 공간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담아


현대미술에서 ‘빛’의 중요성은 이미 여러 작가가 입증해 보였다. 백남준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비디오아트로 미술의 신기원을 연 백남준은 말년에 레이저아트를 선보이며 표현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많은 작가들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각종 작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과 런던을 무대로 활약하는 리경(Ligyung) 또한 빛으로 공간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다. 그가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다.

녹색의 광선들이 칠흑 같은 전시장에서 예리한 촉수를 뻗치며 빛을 발하고 있다. 초록빛 레이저 광선은 벽면의 거울과 겹겹이 쌓인 유리를 통해 끝없이 반사를 거듭하며 마치 매트릭스 같은 공간을 창출한다. 현란하게 쏟아지는 빛의 세례를 받으며 미술관에 들어선 관객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카오스적 공간에 빠져들며 색다른 지각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미디어아티스트 리경(43)의 ‘더 많은 빛(more Light)’이란 공간작업이다. 리경은 오는 7월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리경, more Light’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연다. 이 전시는 코리아나미술관이 선정, 후원하는 중진작가 초대전이다. 리경은 우리 미술계에서 드물게 ‘빛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그는 빛을 통해 드러낸다. 

녹색의 강렬한 레이저 광선이 벽면의 거울과 유리를 통해 연쇄적으로 뻗어나가 매트릭스 같은 세계가 된 리경의 공간 설치작업 ‘더 많은 빛(more Light)’. 관람객들이 빛 사이를 옮겨다니며 작가가 만 든 공간을 체험토록 한 ‘관객 참여형 전시’이다.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이전 작업에서 인간 시선의 불완전성을 다뤘던 그는 이번에는 지금 여기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빛과 신체적 조응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즉 ‘움직이는 빛의 공간’을 통해 현대인의 분열적 자아를 표현하며, 이를 벗어나는 것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 것.

경희대와 영국 런던의 첼시국립예술대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지난 10년간 설치작업에 매달려왔다. 유승희 코리아나미술관 부관장은 “리경의 작업은 매번 실현 여부가 불투명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지만 공간에 대한 남다른 아이디어와 뚝심, 예리한 감성, 기술적 실험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온 흔치 않은 작가”라고 평했다.

이번에 작가는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공간작업도 선보였다. 붉은 광선, 연기, 영상과 사운드로 전시장 전체를 감싼 공감각적인 이 작업 또한 관객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이다. 어두운 지하 전시관에 들어서면 적색의 광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문과 벽이 보인다. 15분에 한 차례씩 뿜어져나오는 물안개가 붉은 빛에 닿는 순간, 가늘고 긴 투명한 통로가 나타나는 것. 이 신비로운 통로는 연기가 존재할 때만 감지된다. 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간을 옥죄는 사회시스템을 상징하고 있다. (02)54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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