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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유럽가구에 미친…제대로 미친…
40년간 월급 절반 쏟아 부으며 명품가구 1200점 수집…‘세계최고 가구 컬렉터’ 오다 노리쓰구 도카이대 교수
우리도 이런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 필요하다. 미쳐도 제대로 미친 사람, 한 가지에 깊고, 끈질기게, 또 진지하게 미친 사람 말이다. 한 달 월급 4만엔 중 2만4000엔을 의자 수집에 쏟아부을 정도로 가구디자인에 단단히 미쳤던 사람. 그가 바로 세계적 가구 컬렉터 오다 노리쓰구(66) 도카이대 예술공학부 교수다. 삿포로 외곽에 위치한 그의 가구창고에는 무려 1200점에 달하는 명품가구가 소장돼 있다. 그가 북유럽 가구예술의 리더 핀 율(1912~89)을 소개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의 오다 교수는 가구디자인과 관련된 동서양 책자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가구연구가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개인이 수집한 의자 컬렉션에 있어선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힌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관장 이해욱)이 ‘핀 율 100주년 기념전’을 열며 그의 수집품만으로 전시를 꾸몄을 정도니 그 질과 양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대학을 나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오다 교수는 1970년 초 잡지를 보다 우연히 덴마크 디자이너 율의 ‘치프테인(추장) 체어’의 사진을 접했다. 온몸이 마비되듯 전율이 일었다. 그리곤 곧바로 율 작품 탐사에 들어갔고, 기회가 닿는대로 가구를 모으기 시작했다.


급기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날아간 그는 율을 직접 만났는가 하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북유럽 가구에 대한 책과 도록을 무려 7권이나 집필했다. 책 속의 섬세한 가구 그림은 모두 그가 일일이 그린 것이다. 세계 각국의 가구수집가에게 ‘멘토’로 꼽히는 그는 그러나 ‘컬렉터’라 불리는 걸 못내 꺼려했다.

“내가 가구를 수집하는 것은 연구를 위해서다. 소장품은 내게 퍼즐 조각이다. 이를 잘 맞춰 디자이너의 예술세계를 조망하고, 디자인 계보를 만드는 일이 너무 흥미롭다. 앞으로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어 이 오묘한 세계를 후대에 잘 알리고 싶다.”

오다는 40여년 전 율의 ‘치프테인 체어’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찌나 기품있고, 위풍당당한지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실제로 치프테인 체어는 덴마크의 왕 프레데릭 9세가 앉아 더 유명해졌다. 율의 ‘No.45’ 의자 또한 그를 전율케 했다.

오다는 “율 의자 중 최고 걸작인 ‘No.45’는 우아한 팔걸이가 그야말로 디테일의 결정체다. 그 완벽한 디테일에 나는 완전히 포로가 됐다”고 했다. 실제로 ‘No.45’는 전문가 사이에서 ‘현대 의자의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걸이를 지닌 의자’라 불린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도 이 의자가 설치돼 있다.


오다는 의자를 모으다 보니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고 했다. “북유럽 가구의 전성기인 1950~60년대를 이끌었던 율을 만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가 사람을 안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모으고 만들었던 가구그림집과 사진, 설계도면 700여점을 지인에게 보여주며 설득했다. 디자인 역사를 정리 중인데 비어있는 부분을 작가 육성으로 채워넣고 싶다고 했다.” 그의 열정에 감동한 유럽 디자인계 사람들이 다리를 놔줘 율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다 교수가 1200점에 달하는 명품가구를 컬렉션했으니 돈도 엄청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부모가 상당한 재력가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를 만나기 전 대부분의 사람은 ‘필시 최고급 명품 금시계를 차고, 고가의 슈트로 멋을 낸 부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의외로 평범한 샐러리맨형 수집가였다. 물론 직장생활 초기에는 월급의 반 이상을 가구 할부금으로 썼다. 이후 대학교수가 된 뒤로는 월급은 전액 아내에게 주고, 그래픽디자인 청탁이나 원고료 수입이 조금씩 늘어나자 그 돈을 모아 가구를 수집했다. 30~40년 전에는 지금처럼 가구가 비싸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그는 돈보다도 관심과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오다 교수는 자신의 수집품을 자식에겐 한 점도 상속하지 않겠다고 애진작에 못을 박았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건강도 전만 못해 수집품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도 힘들어졌는 그는 디자인 뮤지엄을 세우는 게 마지막 꿈이다. 오다 교수의 컬렉션이 방대하고, 질도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면서 덴마크 및 한국 등지에서도 뮤지엄 설립 제의가 답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점 한점 힘들게 일본에 들여온 것인 만큼 가능한 한 일본에 남겨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구 중에서도 의자 연구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오다 교수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된 욕망이 형상화한 게 의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좋은 의자에 앉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튼튼하면서도 앉았을 때 편안하고, 아름다운 조각에 못지않을 만큼 완결성이 있는 그런 의자 말이다. 텅 빈 공간일지라도 아름다운 의자 하나만 있어도 그 공간은 충분히 아름다워 보인다.”

오다 교수는 40여년간 모아온 1200점의 소장품(의자ㆍ테이블ㆍ조명ㆍ캐비넷ㆍ식기류ㆍ도자기 등)을 700㎡(약 211.75평) 넓이의 창고에 보관한다. 자택 또한 뮤지엄을 연상케 한다. 그는 집에서 율의 다양한 의자를 사용한다. 그의 강아지 역시 율 의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다리를 떼어내면 마치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 작품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펠리칸 체어는 강아지가 거의 전용해 “강아지털이 수북하다”고 전했다.

명작가구의 조건에 대해 오다 교수는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비율을 지녀야 하며, 기능적이고 튼튼하며,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또 의자는 이동이 잦은 가구이므로 너무 무겁지 않아야 하고, 시대적으로 획기적인 것이어야 명작이라고 했다.

그는 건축가 출신으로 시장에 내다팔 가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쓸 의자를 디자인한 율이 혁신적인 디자인을 시도한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의자의 구조를 잘 몰라 대량생산용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 사이에 ‘구조음치’로 불렸지만 오히려 가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 대단히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

20대 청년기에 의자 수집을 시작해 오늘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1200여점의 명품가구를 수집한 오다는 “팍팍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이 생활 속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며, 심미안을 키워냈으면 좋겠다. 이제는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가려내는 ‘예리한 안목’이야말로 또다른 경쟁력”이라며 말을 맺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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