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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리콘밸리보다 수원 · 포항이 聖地”
기업홍보의 롤모델… ‘가나다라ABC’ 낸 권오용 SK그룹 고문
베끼기보다 창조적 개량 거듭
선대 경영자 창조성 기억해야

지나친 정부개입은 창의 저해
규제 완화로 지하경제 투명화

국내 지도자들 좌석병 심각…
언제나 답은 현장·사람에 있다



전경련과 금호그룹, KTB네트워크, SK그룹을 거치며 빅딜, SK-소버린 사태 등 재계 현안의 중심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해 온 권오용 SK그룹 고문. 재계의 아이디어맨이자 기업홍보의 롤 모델로 평가받는 그가 32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정리하며 다섯 번째 책을 펴내 주목을 끈다.

제목은 ‘가나다라ABC’. 글을 쓰면서 글에서 배우고 경험한,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사람, 기업, 정부, 리더십, 규제, 시장, 그리고 권 고문의 개인사까지 다양한 이슈를 담았다. 그러나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있다. ‘우리가 만들고 키워 온 것들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다.
 
권오용 SK 고문은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답게, 시장친화적인 과감한 규제개혁과 지도자들의 의식혁신을 강하게 촉구했다. 아울러 우리가 만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최근 헤럴드경제 편집국에서 만난 권 고문은 상하이 동방명주(東方明珠) 1층 로비에 걸린 ‘세계 10대 경관’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리장성, 루브르박물관, 후지산 등과 함께 전시된 한국 작품은 의외로 시청앞 광장의 거리응원 사진이란다. “사람이 한국의 자랑이자 큰 자산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그는 해석했다.

권 고문은 “어떤 사회건 구성원의 역량과 그 역량을 발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우리는 빼어난 인재역량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나 최빈국에서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가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나라 밖에서 많은 것을 벤치마킹해 왔지만, 선대 경영자들은 무작정 베끼지 않고 창조적으로 개량을 거듭해 우리 것으로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실리콘밸리나 오마하(워런 버핏 거주지)가 성지가 아니라 지난 50년의 땀과 혼이 뒤섞여 녹아있는 수원과 울산 포항이 진짜 우리가 가꾸고 기려야 할 성지”라며 자부심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한복과 한식, 한옥, 한의학, 한글 등 우리 주변에는 우리나라의 격을 높이는 문화적 유산이 너무 풍부하다”며 “이들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복을 국가행사의 드레스 코트로 활용하고, 국내 특급호텔에 한식당을 최소한 하나씩은 둘 것도 제안했다.

정부와 기업에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개입해 민간의 창의를 쇠퇴케 하고 시장을 위축시켜 온 게 우리 서비스산업”이라고 비판했다. 병원은 의료기관, 학교는 교육기관, 로펌은 법률기관으로 칭하며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2차산업의 연장선상에서 규제가 이뤄졌고 결국 세계 최대의 룸살롱과 러브호텔만 양산했다며 아쉬워했다.

시장원리를 부정하는 정치권의 온갖 장밋빛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국민경제를 갉아먹을 위험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뱉기만 하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반값 아파트를 그 예로 들었다. 공허한 논란과 기대 속에, 결국 집 가진 사람은 하우스푸어가 되었고 집 없는 사람은 전세난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지도자들이 ‘좌석병’에 걸렸다고 단언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 만나는 시간은 줄고 서류 보는 시간만 많아졌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사람까지 앉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라며 “답은 현장에, 사람에게 있는데…”라며 한숨을 지었다.

대-중소기업 갈등에 관해서도 훈수를 두었다. ‘동반성장=동시성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강조했다. 대신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설 것을 권고했다.

그는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각별히 강조했다. 무상급식이나 기름값 문제도 이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하경제야 말로 투명경제의 최대 장애물”이라며 “각종 기업규제를 완화해, 지하로 검은 돈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규제완화와 관련해선 “제주도가 1년 내내 성수기라고 할 만큼 된 것은 저가 항공사를 취항시킨 덕분이며, 수도권 공장 총량제에서 아파트형 공장을 제외시킨 규제완화 덕에 G밸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권 고문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도 공개했다. 전경련 신입사원 꼬리표를 갓 뗀 1981년, 그가 “대통령을 따라 전경련 회장단이 외국을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후 역대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어김없이 수행 경제인단이 구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오랜 임원 경험에 새내기 임원들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대기업 임원은 누리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저히 변해야 한다”며 “특히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실행력이야말로 임원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전했다.

그는 ‘달리기 마니아’다. 100m 달리기 속도로 매일 평균 10㎞를 뛴다. 마라톤 풀코스도 이미 다섯 번을 완주했다. 빨리, 바쁘게, 멀리 달려온 그가 지금은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 이제 다음 목표를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조진래 선임기자>
/jj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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