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한다. 독과점 구조 속에서 이자나 수수료 수익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번다. 망할라치면 정부가 혈세를 쏟아붓는다. 이런 은행들이 배당총액을 늘렸다. 정부의 보호 아래 장사하는 은행들의 고배당 행태에 금융당국과 국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금융회사, 당국 비웃 듯 고배당=정부는 그동안 은행들에게 고배당 자제를 주문했다. 지난해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배당성향(순이익 중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비율)을 낮췄지만 순이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주주들에게 돌아간 배당총액은 되레 늘어났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넘는다. 주가를 관리하려면 주주들의 요구를, 특히 외국인의 고배당 요구를 묵살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고배당 자제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외국인 투자가가 사실상 대부분인 은행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금융당국이 월가 시위를 계기로 은행 등에 고배당을 자제하도록 당부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다.
외국계 은행의 고배당은 국부유출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지난해 외국인 배당금은 6886억원으로 전년보다 37.1% 늘었다. 한국씨티은행(3분기 기준)도 외국인 배당액이 1299억원으로 29.6% 증가했다. SC은행은 2년 연속 2000억원을 배당했다. SC은행과 씨티은행은 외국인 지분율이 100%로, 배당금은 모두 외국인 몫이다. 이들 은행은 국내 기업과 개인을 상대로 수익을 올린 뒤 외국인들에게 다 퍼줬다.
▶고배당 이대로 좋은가=주식회사가 사업을 통해 얻은 순이익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문에 무작정 비판하기는 어렵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무 건전성이나 유동성을 제약하지 않는다면 남는 돈을 배당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유철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평균치보다 높은 배당성향이나 외국인의 영향력 행사에 따른 고배당은 문제로 삼아야한다”고 했다.
이렇다할 주인이 없는 까닭에 고배당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고경영자(CEO)가 재투자보다 주주이익 극대화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고배당 자제 당부를 묵살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원색적인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의 채권자는 예금자인 국민이고, 결국 국민이 주인이라는 결론에서 출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은행이 망할 일도 없지만 망하게 되면 예금자 손실을 정부 재원으로 충당해준다. 경영의 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주주이익 극대화는 은행들에게 예외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 처럼 매력적인 투자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배당이 없다고 외국인들이 떠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