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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니스토리> ‘레몬시장’과 에버랜드 투자
‘레몬시장 이론(Market for Lemons)’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애컬로프(George A. Akerlof)의 1970년 논문에 처음 등장한 게임이론의 한 부류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역선택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애컬로프는 이를 바탕으로 한 정보경제학으로 스펜스, 스티글리츠와 함께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는다.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확률이 높다. 물건의 질이 좋지 않다면 이미 정해진 시세(時勢)가 꽤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물건의 질이 좋다면 이미 정해진 시세가 마뜩잖을 수 있고, 시장에 내놓길 꺼릴 것이다. 즉 시장에는 늘 시세보다 질이 떨어지는 물건이 더 많아지므로, 사는 입장에서도 제값을 하지 못하는 물건을 살 가능성, 즉 역선택 확률이 높아진다.

레몬시장 이론은 주식시장에서도 꽤 유용하다. 최근의 테마주 열풍이나, 늘 반복되는 증권사들의 장밋빛 전망 등을 풀이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음달 초 공모가 이뤄질 한국장학재단의 삼성에버랜드 지분매각 작업은 이 이론으로 풀면 꽤 잘 맞아떨어진다.


투자설명서를 보면 앞으로 기업가치가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좋아진다는데, 왜 팔려고 할까? 한국장학재단은 이 지분을 삼성으로부터 기부받았다. 원가가 든 게 아니다. 또 정부 산하단체로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장학재단으로선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갖고 있는 것보다 파는 게 뭔가 더 이득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럼 사는 입장에서도 이득일까? 삼성에버랜드 기업가치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치자. 비상장사라 주주혜택은 배당뿐인데, 쥐꼬리다. 상장을 한다면 주식을 팔아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당 기간 ‘종이쪽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얼마 전 ‘상당 기간’ 삼성에버랜드가 상장하지 않을 것이라 잘라말했다.

사실 삼성에버랜드 상장설은 금산법(비금융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5% 초과 금지) 때문에 삼성카드가 보유 지분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시작됐다. 수익성이 좋지 않아 쉽게 임자가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 때문에 ‘환금성’이 담보되는 상장도 가능하다고 관측됐다.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를 삼성생명 상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채권단 보유 삼성생명 주식에 환금성 부여)한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삼성카드가 가졌던 지분은 KCC에 매각됐으니, 굳이 상장할 이유가 없어졌다. 삼성에버랜드가 자본조달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그럼 KCC는 왜 환금성도 떨어지는 주식을 샀을까? KCC의 주력사업은 도료 및 소재와 실리콘이다. 이 분야에서는 최근 IT와 연관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IT 거인이다.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17%의 힘은 결코 적지 않다. 상법상 3% 이상 주주가 가진 권한은 이사선임과 회사 검사, 주주대표소송 등 상당하다. 이 정도면 삼성그룹이 KCC와 거래를 늘려야할 이유도 될 듯싶다? KCC쯤 되는 회사라면, 삼성에버랜드 주식에서 직접적인 현금흐름은 만들지 못해도 사업협력을 통한 간접적인 수익은 낼 수 있다.

그런데 KCC처럼 사업기회로 활용할 여지가 없는 단순투자자라면, 연 0.2%에 불과한 배당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상장에 매달려 ‘거액’을 재워둘 수밖에 없다. 삼성카드가 KCC에 장부가 대비 싼값에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판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당 기간 비유동자산이 될 위험의 대가를 미리 쳐준 셈이다. 삼성카드 입장에서도 삼성에버랜드 지분은 삼성캐피탈 합병 과정에서 생긴 ‘혹’이다. 

<홍길용 기자 @TrueMoneystory>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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