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았던 미국이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굴욕을 겪고, 고공행진을 벌였던 금값은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지난 8월 이후 전개된 글로벌 증시 불안 속에서 이를 목격한 투자자는 더이상 안전자산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런 가운데 그간 위험자산으로 여겨졌던 이머징마켓 국채가 오히려 미국 국채보다 안전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근 BOA메릴린치와 유라시아그룹은 공동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경제에서 이머징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보다 높아지고 있고, 선진국에 비해 이머징국가의 부채 비율이 낮다는 점을 들어 이같이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이머징국가와 개발도상국이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2년간 세계은행(1003억달러)보다 더 많은 자금(1100억달러)을 선진국에 지원하기도 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인구가 많고 원자재가 풍부한 인도ㆍ인도네시아 역시 주목할 만한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브릭스(BRICs)처럼 이머징국가를 한데 묶어서 보는 것은 적절치 않은데, 예를 들어 러시아의 경우 원자재는 풍부하지만 인구 감소와 관료제ㆍ불투명한 기업경영 등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 국가에 비해 주목은 덜 받았지만 터키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10.2% 성장했고, 나이지리아는 1억5500만명에 달하는 인구에 기업정신이 높아지고 있어 떠오르는 신흥국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또 선진국이냐, 이머징국가냐를 따지기 전에 부채국가냐, 아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은 대표적인 부채국가로 꼽힌다. 반면 이머징국가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미국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보고서는 “과거에는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를 겪었던 중국ㆍ말레이시아 국채에 투자하는 것을 어리석게 여겼다. 미국 국채에 비해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낮은 미국 국채금리와 상대적으로 튼튼한 이머징국가의 재정상황을 볼 때 반대의 시각이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결론은 변화의 시대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외 지역에 투자하는 비중을 현재 8~10%에서 두 배, 세 배가량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재정적으로 건전한 환태평양, 남미국가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는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채권형 펀드를 이용하는 것이 스마트한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신수정 기자 @rainfall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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