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블랙홀 파장 곤혹
주요 국정현안 파행 우려
복지 확대 요구 확산땐
균형재정 차질 불가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지자체의 일” 이라며 거리를 뒀던 청와대가, 막상 투표결과 여파로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가 기정사실화하면서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임기 후반 국정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뜻하지 않은 ‘선거 블랙홀’이 등장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각종 복지정책,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국방개혁 등 주요 국정 현안의 파행이 예상되는 데다, 자칫 재보선에서 패배할 경우 조기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가정은 오 시장이 조기 사퇴를 선택해 오는 10월 재보선이 치러진다는 전제하에서 고려되는 악재들이지만 재보선이 내년 4월로 미뤄진다 해도 총선과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25일 일부 관계자 사이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다수 참모들이 “오 시장의 고집이 화를 불렀다”며 편치 못한 속내를 드러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투표율 미달을 계기로 야당의 복지 확대 요구가 거세질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균형 재정’과 ‘맞춤형 복지’ 기조를 유지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장 2011년 세제개편안을 앞두고 여당의 감세 철회 요구도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지난 18일 부재자투표를 한 것이 오 시장에 대한 측면 지원으로 비쳐질 경우 상처는 더 깊어진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서울 시민이고, 투표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큰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의사표시를 투표를 통해 하자는 뜻에서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75%의 시민들은 결국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단 오 시장의 조기 사퇴만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명분도 없지는 않다.
사퇴 이전에 시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9월 국정감사를 통해 그간의 공과를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물러나는 게 도리라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 시장의 거취에 대해 “당과 충분히 상의하겠지만 오 시장을 지원한 200만명 이상의 시민들에게 책임 있는 마무리를 할 필요가 있다. 아름답게 퇴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조기 사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투표 결과를 보고받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김두우 홍보수석은 전했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