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혹독한 서바이벌은 취업일 게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한 MBC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이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은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취업시장의 냉혹함을 알기에 실감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TV 속 꿈과 환상이 아닌 현실세계를 들여다보는 불편함을 겪기 싫은 반사심리가 작용한 것.
점점 과열되는 ‘서바이벌 쇼’ 열풍은 제작자에게는 안전한 보험가입 같으면서도 ‘대박’ 혹은 ‘쪽박’을 기다리는 주식이기도 하다. 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제작에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나타난다. 시청자로선 급증하는 유사 프로그램 속에서 피로감이 점차 누적된다.
▶당신이 ‘엿보는’ 14개의 생존현장=소재와 방식을 불문하고, 서바이벌 쇼가 추구하는 기본정신은 휴머니즘이다. 극적인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애. 하지만 사실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쇼를 즐기는 보통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활성화시키는 타인의 삶(그것도 가장 치열한 순간)에 대한 ‘엿보기’다.
지금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엿볼 수 있는 타인의 꿈, 사랑, 열정으로 버무린 ‘생존기’는 무려 14개에 달한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를 필두로 ‘톱밴드(KBS)’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KBS)’ ‘불후의 명곡 2(KBS)’ ‘댄싱 위드 더 스타(MBC)’ ‘키스앤크라이(SBS)’ ‘기적의 오디션(SBS)’ 시즌 3까지 마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온스타일)’ ‘코리아 갓 탤런트(tvN)’ 등 그 종류와 성격을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표 참조
▶사람들은 왜 ‘서바이벌’에 열광하나=엠넷미디어의 ‘슈퍼스타K’ 가 몰고온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서바이벌 쇼의 무한경쟁을 부추겼다. 시청자들은 프로가 되고 싶은 아마추어들의 열정, 기존 가수들의 새로운 도전 등을 한발 떨어져 본다. 때론 자신의 일처럼 손에 땀을 쥐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지만 그래도 ‘남 일’이다.
성공회대 신방과 김창남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는 삶 자체가 ‘서바이벌’”이라며 “자신은 연루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쇼를 감상한다. 그런 위치가 주는 안도감과 함께 때론 눈시울을 적시며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서바이벌 쇼’는 시청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음악, 연기, 일 등 다양하게 포장했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제대로 건드린다. 그리고 방송사는 이러한 시청자들의 열망을 수요로 시청률 장사를 한다. 과히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 서바이벌 쇼의 ‘자기복제’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소재, 새로운 방식…서바이벌 쇼의 확장=최근 ‘자기복제’ 시대를 벗어나려는 조짐은 보인다. 계속되는 비슷한 포맷의 서바이벌 쇼에 시청자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일변도에서 서바이벌 쇼가 확장해 나가고 있다.
12일 첫 전파를 타는 MBC플러스미디어의 ‘마이맨캔(My man can)’은 연애심리게임을 서바이벌로 풀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줬다. 심사위원들의 냉철한 평가와 참가자들의 진정성이 호응을 얻고 있는 SBS ‘기적의 오디션’은 기존 서바이벌 쇼의 식상함을 탈피했다는 평이다. 케이블에서는 디자이너, 모델 등 다양한 분야의 서바이벌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
▶간접광고, 자극적 소재…이대로 괜찮나=하지만 이마저도 ‘마이맨캔’은 외국 쇼의 포맷을 차용했고, ‘기적의 오디션’은 서바이벌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는 다시 시청률 경쟁을 위한 자극적 소재의 무분별한 차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 10일 MBC가 새롭게 선보인 ‘우리들의 일밤-집드림’ 은 일명 ‘내집마련 프로젝트’다. ‘신입사원’으로 “직원도 오디션으로 뽑냐”며 수많은 질타를 받은 MBC가 이번엔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를 건드린다. 바로 부동산이다. 무주택 가정을 대상으로 최종 생존 가족에게 3억원 상당의 ‘땅콩집’을 선물한다. 일단 첫방송은 나름의 훈훈함을 줬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더 두고볼 일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충당키 위해 점점 노골화되는 간접광고도 눈총을 받고 있다. 최근 드라마 등 모든 장르에서 간접광고가 심해지고 있지만 서바이벌 쇼의 특성상 협찬으로 인한 간접광고가 ‘휴머니즘’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상업적으로 물들일(이미 들었거나) 가능성이 농후하다.
‘쇼’가 끝난 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시청자는 30초간 울고 웃지만, 출연자는 어떤가. 몇개월간 합숙하며 오디션을 치르고, 단 3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연습해 스케이트를 타고, 단 한 가족에게 주어지는 ‘집’을 위해 100가족이 절실한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모였다. 자신의 개인 삶이 여과없이 방송에 드러난 이들의 허탈감은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동미 기자@Michan0821> pd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