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재단 ‘A3 바스켓통화 창출’ 전문가 콘퍼런스
3국 외환액 전세계 50% 육박달러가치 20년내 반토막
국제통화 재편 공조 필요 공감
6000억弗기금조성 채권발행
원·엔·위안 바스켓통화 창출
국가간·민간 거래 적극 활용론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50%를 넘게 쌓아놓은 한ㆍ중ㆍ일 세 나라가 뭉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위상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ㆍ중ㆍ일 세 나라는 ‘죽기 살기’로 달러화를 긁어 모아 곳간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결국 외환보유액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외환보유액 가치가 20년 안에 반토막 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한ㆍ중ㆍ일이 뭉쳤다. 그런 서글픈 현실을 공동으로 헤쳐나가 보자는 취지에서다.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2일 기획재정부의 후원을 받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ㆍ중ㆍ일 통화협력을 위한 전문가 콘퍼런스 ‘A3 트라이앵글 이니셔티브’를 열어 ▷A3(한ㆍ중ㆍ일) 외환보유액을 이용한 공동기금 창설과 통화스와프 상시화 ▷한ㆍ중ㆍ일 바스켓통화(ABC) 창출과 통화협력 강화 ▷한ㆍ중ㆍ일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협력 등을 골자로 한 ‘정책 권고안(Policy recommendation)’을 채택했다.
아직은 민간 차원의 아이디어 수준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 권고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자’는 시금석이 놓인 셈이다. ‘A3 이니셔티브’는 ‘한ㆍ중ㆍ일이 4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도 왜 금융위기를 두려워하고 통화가치 안정에 부심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일단 한ㆍ중ㆍ일 3국의 외환보유액에서 2000억달러를 떼어내 공동기금(ACF)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공적채권을 발행한다. 그 채권을 달러화나 유로화처럼 새로운 투자수단은 물론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채권의 액면은 원화와 위안화, 엔화를 바스켓으로 삼은 새로운 화폐단위로 표시한다. 한ㆍ중ㆍ일 바스켓통화(ABC)를 창출해 G20(주요 20개국)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국제통화체제 재편 논의에 공동으로 대응한다. 한ㆍ중ㆍ일은 새로운 통화인 ABC를 국가 간 거래에 사용하고, 민간 거래에서도 병행통화로 사용되도록 추진한다.
또 ABC 표시 채권을 활성화해 역내 채권시장을 안정ㆍ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렇게 하면 달러화 중심의 외환보유액을 늘릴 필요가 없고, 역내 투자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열린 콘퍼런스 제1 세션에서 ‘외환보유 공동기금 창설과 통화스와프’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장쳉시 중국 런민대(人民大) 교수는 “과거 금융위기(old crisis)는 비교환성 통화(non-world currency)를 보유한 국가에서 주로 발생했으나 새로운 금융위기는 달러화 같은 교환성 통화(world currency)를 보유한 국가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영향을 미쳤다”며 “그 결과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 압력을 받게 되고, 미국의 교역 파트너엔 인플레이션 압력과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물론 이날 제안된 A3 이니셔티브가 실현되려면 수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한ㆍ중ㆍ일 3국의 이해관계는 정치 경제적으로 살벌하게 얽혀 있다. 정 이사장도 “우리의 제안이 지금은 ‘영산강에 쌀뜨물 버리기’ 정도로 미약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ㆍ중ㆍ일의 영향력 있는 학자들이 모여 각국 정부에 이런 제안을 권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통화를 매개로 한ㆍ중ㆍ일을 하나로 묶어내는 논의는 이제 시작됐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듯, 처음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수 있다. 국제금융 질서의 재편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한ㆍ중ㆍ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공통의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