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44) 씨는 최근 한 지역 복지단체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았다. 기부를 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어리둥절했다. 기부를 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최근 승진을 한 김 씨를 축하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A 기업 B 상무가 김 씨의 이름으로 단체에 10만원을 기부한 것. 금방 시들어버리는 화환 대신 의미있는 선물을 하고자 했던 B 상무의 고민이 깃든 선물이었다. 김씨는 “내가 직접 선행을 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며 뜻밖의 ‘기부선물’에 기뻐했다.
생일ㆍ졸업ㆍ승진 등 지인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부 선물’을 하는 이른바 ‘신(新)기부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선행은 받는 사람의 마음도 매우 기쁘게 한다. <관련기사 5월 25일자 헤럴드경제 11면>
‘신(新)기부족’ 취재를 위해 B 상무에게 연락을 취했다. 기부로 축하인사를 전하는 선행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알고보니 기부 선물은 B 상무 개인만의 선행이 아니었다. 그가 재직하고 있는 A 기업은 지난해 1월부터 축하 인사를 기부로 대신해오고 있었다. 직원들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물을 찾자’며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 그런데 해당 기업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제발 알리지 말아달라”며 기자에게 몇 번이고 부탁을 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A 기업이 기부를 하는 C 복지단체에도 연락을 취했다.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A 기업이 기부선물을 한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알려지자 다른 기부ㆍ모금단체에서 ‘우리 단체에도 기부를 해달라’는 요구가 쇄도했던 것. C 복지단체 관계자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업 자체가 중단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일부 단체는 ‘왜 특정 단체에만 기부를 하느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A 기업 관계자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좋은 뜻을 갖고 진행하는 사업인데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이 돼 홍보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에 알리지 않는 겸손함이 기부의 덕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좋은 일을 하고도 죄를 지은 양 숨겨야 하는 건 옳지 못하다. 일부 기부단체의 볼썽사나운 투정이 ‘기부선물’을 건네는 사람들의 선행 의지를 되레 꺾진 않을지 우려가 앞선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