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원들에 살포명령·권유
인근주민도 대다수 동원
주민 피해보상 ‘제자리걸음’
수년후 손·발가락 마비증세
나환자촌서 약 구해보기도
1970년대 초 비무장지대(DMZ)에 살포된 고엽제 중 일부는 베트남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것이었으며, 베트남전 출신 군 지휘관들은 고엽제임을 알면서도 부대원과 주민들에게 고엽제 살포를 명령ㆍ권유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78년 경북 칠곡 미군기지에 매립된 고엽제 중 일부가 베트남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의 증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또 강원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인근 주민 대다수가 당시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으며 현재까지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월남에서 가져온 고엽제 DMZ에 뿌렸다”=1973년 당시 강원도 화천에 있는 7사단 8연대에서 소대장으로 일했던 김모(60) 씨는 관할 내 제초제 살포 지휘를 내렸던 장본인이다. 김 씨는 26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하루에 4~5시간 동안 약 4리(1.6~1.8㎞)씩 6~8포 정도 분량의 모뉴런을 매일 뿌렸다. 1974년도 5~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50일 정도 살포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그냥 제초제인 줄 알았다. 물에 타서 풀, 나무에 뿌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고산지대로 물을 구하기 어려워 물을 섞지 않은 채 뿌리기도 했다. 부대원들이 철모나 세숫대야에 담겨 있는 고엽제를 손으로 뿌렸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당시 사용했던 고엽제는 베트남에서 가져온 것으로, 베트남전 출신 지휘관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월남에서 철수하면서 한국군이 쓰던 걸 가져와서 사용했다. 참전하지 않았던 소대장, 중대장들은 고엽제인 줄 몰랐다. 문서로만 확인했기 때문에 일반 제초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월남전 출신 지휘관은 다 알았다. 1973년도 철수 당시 마지막으로 철수 지휘를 한 이들은 귀국 보따리에 고엽제가 담겨 있는 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지역에 거주했던 장모(70) 씨도 “군인의 권한이 막강하던 시대라 도와 달라는 요구를 안 들어줄 수 없었다. 뭔진 모르지만 해 달라니까 해줬다. 경운기에 200m 길이 호스를 연결해서 뿌렸다”고 밝혔다.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고 있지만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유공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고엽제 살포 작업에 경운기를 빌려줬던 박모(70) 씨는 끔찍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고름과 진물이 생기더라. 10년 동안 피부병인 줄 알고 살았다. 보훈병원에 갔더니 월남 갔다 왔냐고 묻더라. 고엽제 피해자와 증상이 비슷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환자촌에 가서 약도 구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1971~74년 25사단 70연대에서 벙커병으로 근무하며 고엽제 살포 작업에 동원됐던 박모(62) 씨는 “20년이 지난 뒤 발가락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말초신경이 손상됐다고 하더라. 그 이후 손가락 α발가락 모두 마비돼버렸다. 요즘은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3사단 71포대에서 근무했던 장모(61) 씨는 “피부도 가렵고 다리도 힘이 없어서 외출을 할 수가 없다. 월남전 피해자들과 비슷하다. 보상을 요구하니 군 측에서 조사에 나서기도 했었는데 고엽제를 뿌린 일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가 직접 뿌렸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망연자실해했다.
사건팀/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