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 선행 실천 보람
지난 11일. 양하은(20) 씨는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 발신은 국제구호개발단체 굿네이버스. 편지에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단체에 기부금을 보낸 적인 없는 하은 씨는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영어 과외교사인 조영심(36) 씨의 깜짝 생일 선물이었다. 조 씨가 생일을 맞은 하은 씨의 이름으로 굿네이버스에 3만원을 기부한 것. 조 씨의 깜짝 기부선물을 받은 제자는 하은 씨까지 포함해 6명이 됐다.
생일ㆍ졸업ㆍ승진 등 지인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부 선물’을 하는 이른바 신(新)기부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축하를 받을 상대의 이름으로 복지ㆍ모금단체에 대리 기부를 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상대방은 특별한 날, 자신의 이름으로 선행을 실천한 보람을 선물받는다. 기부에 따른 소득공제영수증도 발급 가능하다.
조 씨는 대표적인 신(新)기부족이다. 지난 10년 동안 매달 작은 돈이나마 기부를 실천해온 조 씨는 지난해부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생일을 맞을 때면 이들의 이름으로 기부선물을 해왔다.
기부선물 운동을 벌이고 있는 영어 과외교사 조영심(36ㆍ왼쪽) 씨와 제자 양하은(20)씨. |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요즘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할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신이 기부를 했다는 생각에 매우 뿌듯해하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 씨의 선물을 받은 학생 중 일부는 선생님의 좋은 뜻을 본받아 기부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는 “‘3만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달 생활비가 될 수도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부모님과 함께 이후에도 기부를 이어가는 학생들도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 씨뿐만 아니다. 국내 A 기업에 상무로 재직 중인 B 씨는 지난해 1월부터 지역 내 사회복지단체에 지인의 이름으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도 승진을 한 지인의 이름으로 단체에 10만원을 기부했다. 선행을 이어가면서도 한사코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B 씨는 “회사에서도 화환 대신 기부 선물을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값비싼 선물도 좋겠지만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형태의 선물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받는 분들도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부문화는 전통사회의 두레처럼 집단의식에서 비롯됐다. 서구사회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의 매너가 발전돼 나타나는 형태다. 다양한 방식의 기부가 트렌드화된다면 좀 더 많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