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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희 선임기자의 컬처프리즘>임재범이 25년만에 목청 높여 불러본 ‘여러분…’
지난 22일 ‘나는 가수다’ 에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임재범이 끝소절을 다 부르기 전 무릎을 꿇었다.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주지....바로 여러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여있었다. 방청객들은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했고, 반주가 채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위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무대 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가수들과 매니저들도 방청객들이 받은 감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분’은 임재범의 지난날의 고된 삶과 음악이 고스란히 담긴, 이날 무대에 딱 어울리는 곡이었다.

25년전 임재범은 한국의 ‘데이비트 커버데일’이란 칭송을 들으며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가수였다. 천재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신대철이 이끄는 헤비메틀 밴드 ‘시나위’ 1집에서 부른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1986년 당시 록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복동생인 손지창은 이 곡을 부른 가수가 형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말하곤 했다. 그도 90년대 초에 가수로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형으로부터 받은 영향임을 숨기지 않았다.

80년대말 헤비메틀 전성기에 흔히 그랬듯이, 인기 밴드들의 해체와 재결합이 거듭됐다. 록이란 장르가 갖는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 만큼 록밴드 구성원들도 개성이 무척 강했고 자유분방했다. 임재범은 자존심은 매우 강한 편이었지만, 사교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뒤로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다. 팀을 탈퇴하기도 하고 새로운 팀을 만들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보컬만큼은 어딜가나 출중했다. ‘아시아나’에서 활동할 때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라우드니스’로부터 월드투어 제안을 받았다. 동양인에게 흔치 않은 임재범의 목소리에 반한 그는 미국 공연에 함께 동행하고 싶어했다. 미국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행운을 눈앞에 두고, 팀이 해체됐다.

90년대는 서태지, 김종서 등 시나위를 비롯해 록밴드 출신들이 가요계를 지배한 시절이었다. 임재범은 91년 ‘이밤이 지나면’을 발표하며 대형가수 재목으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다. ‘마이클 볼튼’과 비교되며 유명세를 탈 무렵, 그는 돌연 잠적했다. 훗날 그는 방송 무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떠났다고 털어놓았지만 돌발 행동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노란 잠수함’이란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붙었다.

순탄치 못한 지난 25년간의 음악 활동은 유명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성장기를 보낸 그의 인생과 닮아있다. 의지할 곳을 찾다가도, 이내 갈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2001년 결혼 전후로 비교적 안정적인 음악 활동을 했지만,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준 그의 감동적인 무대는 예상 이상이었다. 급성맹장염으로 수술을 앞두고 혼신을 다해 노래하는 열정과 투지를 보여줬다. 수술 후에도 곧바로 녹화장을 찾아 노래를 하겠다고 우겼다고 한다.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털어놓고, 딸이 응원한다며 자랑하는 모습은 , 방황하고 거칠었던 20대 시절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여러분’을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듯했다. 

아쉽게도 이날 무대 이후 임재범의 노래를 듣기 어렵게 됐다. 한달 후 무대로 돌아올 수도 있고,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지난 16일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은 임재범이 도전을 계속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에서 MBC ‘일밤’ 스태프와 협의해 ‘하차’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23일에는 MBC 일산스튜디오를 직접 찾아 ‘나는 가수다’ 시청자에게 아쉬움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인삿말을 녹화했다.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 후 신정수 PD가 다시 메가폰을 잡고 이달 초부터 방송을 재개한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은 첫 등장부 무대를 내려가기까지 단 4주에 불과했지만 강렬한 인상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경희 선임기자/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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