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탈북자가 한국 정부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유출해 북한에 있는 친ㆍ인척 22명이 실종됐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탈북자 이광수(42) 씨는 2006년 3월 17일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할 생각으로 아내와 두 아들, 의형제 김정철 씨와 함께 소형 목선을 타고 탈북한 뒤,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다가 이틀 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통일전망대 앞 해안에서 육군 초병에게 발견됐다.
이 씨는 “우리가 남한에 왔다는 사실과 우리의 인적 사항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 그리고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은 ‘북한 주민 일가족 귀순 보고(제1보)’라는 제목의 상황보고서를 작성해 언론에 배포했고 이 씨 일가족의 성과 나이는 물론 이 씨의 군복무 기간과 이 씨와 김 씨의 직업까지 유출됐다.
이후 하나원에 입소한 이 씨는 소식통을 통해 북한에 남아있는 직계가족 22명이 행방불명됐다고 전해들었다.
절망한 이 씨는 2007년 3월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했고, 영국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1년 가까이 런던에 머무르면서 국제 앰네스티(AIㆍAmnesty International) 관계자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겪은 일을 전했다. 그 결과, 이 씨 가족의 신원이 공개돼 북한에 남은 친인척이 행방불명된 사례가 2007년 앰네스티 보고서에 실렸다.
그러나 이 씨는 2008년 3월 EU 인권위원회에 망명 서류를 낸 상태에서 한국으로 송환됐다.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된 이 씨는 2008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의 신상을 공개해 북한에 있는 친인척의 생명을 빼앗았다며 1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2009년 4월 이 씨의 망명을 받아들인 미국 이민법원의 판사는 이 씨가 한국 정보기관 요원에게서 북한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받았으며, 한국 정부의 신상 공개로 이 씨의 친인척이 실종됐음을 인정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정부가 이 씨의 동의 없이 신상정보를 공개한 사실만 인정하고 북한의 가족이 실종됐다는 주장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청구액의 3%인 3500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산정해 선고했다.
이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19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오연주 기자/o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