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동원돼 노역하다 사망한 조선인을 추모하고자 현지 시민단체가 비석을 세운 자리에 대해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성이 없다”며 세금을 물려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17일 일본 시민단체 ‘기슈(紀州)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이하 모임)’에 따르면 모임측은 미에(三重)현 구마노(熊野)시 기슈 광산에 강제동원됐다 현지에서 숨진 조선인 35명을 추모하는 비석을 지난해 3월 세웠다.
이 비석에는 “조선의 고향에서 끌려와 혹사당하다 돌아가신 분들, 부모 따라 이곳에 와서 죽은 어린이들. 우리는 당신들께서 왜 여기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진실을 밝히고 역사적 책임을 추궁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모임은 애초 광산을 운영한 일본 이시하라(石原) 산업과 구마노시 당국에 부지와 자금 등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한 재일동포 유지한테서 돈을 빌려 2009년 7월에 추모비 부지를 직접 사들였다.
그런데 미에현과 구마노시는 ‘공공성이 없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해당 부지에 부동산 취득세 2만6300엔(약 35만원)과 고정자산세 1만6200엔(약 21만7천원)을 각각 물렸다고 모임은 밝혔다. 부지 소유주는 모임 회원 5명의 공동 명의다.
모임측은 “해당 부지는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고 역사적 책임 소재를 밝히는 공공적 장소”라며 “금액 크기와 상관없이 이곳에 물린 세금을 1엔이라도 낸다면 일본 정부기관의 침략 범죄에 가담하는 셈이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모임은 이와 관련, 지난 3월18일 미에현 쓰(津)시 지방법원에 미에현과 구마노시를 상대로 부동산취득세와 고정자산세 과세처분 취소 소송을 각각 냈다. 변호사 선임비가 부담스러워 소장을 직접 쓰고 본인소송 형식을 취했다.
모임에 따르면 기슈광산은 1934~1978년 운영됐으며 1940~1945년 강원도를 중심으로 조선인 1000여명이 끌려와 강제노역에 투입됐다.
구마노시 당국은 당시 광산에 끌려왔다가 사망한 영국인 포로 16명의 묘지는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나 조선인 강제동원 사망자와 관련해서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모임은 전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본 시민이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보존한 것은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중대한 성과”라며 “지자체가 공공성을 부정한다면 진정한 한일 우호와 연대를 차단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모임은 구마노 현지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고자 일본의 양심적 시민과 재일동포 등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강원도 등을 직접 찾아 피해자 진술을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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