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는 2009년 3월부터 2년 넘게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날이면 어김없이 창일중 교내 공부방(자기주도학습실)으로 향한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공부방에서 제자들의 자율학습을 지도하는 ‘멘토’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창일중이 있는 도봉구 창동과 그의 집(동대문구 휘경동)은 자동차로 왕복 40~50분 거리지만, 그는 이 같은 ‘봉사’를 묵묵히 수행해오고 있다.
권씨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정년보다 5년 일찍 명예퇴직을 했지만 이 학교(창일중)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나간 것이 뭔가 봉사를 하고 싶었다”며 “아이들 곁에 계속 있고 싶어 공부방 자율학습 지도를 자원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 곳에서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자율학습 지도 외에 학생 상담도 하고 담당 과목이었던 국어에 대해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도 해 준다.
현재 창일중의 학교 공부방을 이용하는 학생은 하루 평균 30~40명. 전용각 창일중 교감은 “초창기 평균 10~20명에 불과했던 이용 학생이 많이 늘었다”며 “아이들 하나하나 신경을 쓰시는 권 선생님 덕분”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창일중이 소재한 도봉구는 서울의 여느 강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생활보호대상자나 편부모 가정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무단결석 등 ‘일탈’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다. 권씨는 공부방 좌석을 갑자기 비우는 학생이 생기면 학교 근처에서 해당 학생을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과 같이 고민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권씨는 집안이 어려운 한 제자 이야기를 소개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인데 집이 어려운지, 생활보호대상자 같은데 말을 안 하더군요.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방에 와서 4시간씩 공부하고 귀가합니다. 봉사하는 대학생 멘토나 저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요. 도와주고 싶어서 가끔 그 녀석에게 간식도 사 주고 그래요.”
권씨는 지난 1982년 전남 여수시 돌산섬에 있는 중앙중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 지금까지 제자만 5000~6000명을 키워냈다. 지금도 첫 제자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는 “이 아이들이 벌써 마흔이 넘었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스승의 날이면 꽃을 보낸다”면서 “올해는 내가 환갑이라고 6월에 크게 한 턱 낸다더라”며 웃었다.
권씨는 제자들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순수해요.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저도 순수해지고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요.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공부방에서나마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네요.”
<신상윤 기자 @ssy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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